[파워 인터뷰] 조각가 김선구 씨 "말 조각에 음과 양의 조화로 힘찬 기운 불어 넣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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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에 국제공모전 첫 참가…대상 받아 세계가 '깜짝'
중국에선 한 점에 4억~5억…글로벌 스타 대열에
"조각 오래 할수록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죠"
중국에선 한 점에 4억~5억…글로벌 스타 대열에
"조각 오래 할수록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죠"
1996년 3월20일 저녁,일본 동북부 이와테현의 중심 도시 모리오카.30대 중반의 한 조각가가 숙소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공모전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더뎠고 공간은 빡빡했다. NHK 방송을 틀어놓고 멍하게 앉아있던 그의 눈앞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모리오카시 경마조합회가 주최한 국제 말 조각 공모전 대상에 그의 브론즈 작품이 선정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대상 상금만 1500만엔(당시 1억1000만원).요즘 환율로 2억원이 넘는 거액이다. 새로 건립될 신(新)모리오카경마장의 상징 조형물을 세우기 위해 2년 동안 실시한 이 국제 공모전에는 일본과 미국,영국,아르헨티나,벨기에 등 세계 각국에서 160명의 쟁쟁한 작가들이 몰려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1차 모형심사에서 10명을 선발한 후 2차 작품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를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본선 진출자 중 그와 아르헨티나 작가만 외국인이고 나머지 8명은 일본 작가였다.
'어? 진짜? 오,세상에…' TV 화면을 지켜보던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해외 공모전에 처음 참가한 서른 일곱살의 한국 사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조각가 김선구씨(51)는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이루 말할 수 없었죠.내로라하는 최고의 작가들이 몰려든 국제 공모전에서,그것도 '초짜'가 겁없이(?) 대상을 덜컥 받았으니….더구나 제가 출품한 작품은 경주에서 승리한 우승마가 아니라 패배하고 돌아오는 꼴찌마였거든요. 생각을 너무 깊이 한 건 아닌가,누가 알아줄까 싶었지요. 제목은 '선구자'였어요. 제 이름과 비슷하죠?"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돌아오는 경주마와 그 위에 앉은 기수의 쓸쓸함.'절망 속에서 내일을 기약하는 인생'이라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 작품으로 그는 심사위원장인 가몬 야스오 도쿄현대미술관장으로부터 "완벽한 표현과 부드러운 선 처리가 압권"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어떤 사조에도 물들지 않은 독창성과 원숙미를 갖춘 수작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난 뒤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요. 가몬 위원장이 저를 보고는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며 아주 난감해하는 거예요. 무슨 뜻인가 했죠.통역에게 재차 물었더니 '이만한 조형을 구사한 작가라면 최소한 50대 중반이나 60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젊은 사람인 줄 몰랐다'는 겁니다. 30대 중반 작가에게 이리 큰 상을 줬으니 앞으로 사람들이 당신에게 이 같은 말조각만 주문할 테고 그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므로 자기가 한 작가를 망친 것 같다는 거예요. "
큰 상에 묶여 작품이 굳어져버릴까 염려하는 백발 노장의 진심어린 충고였다. 그날 이후 그는 몇 년 동안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 숱한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작가로 독립하자마자 운좋게 큰 상을 받았지만 앞으로 '진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1년반 동안 두문불출 작업에만 몰입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03년 겨울에야 그는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며 세상으로 나왔다. 전시회 결과는 아주 좋았고,이는 다음해 중국 진출로 이어졌다. 2004년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아트페어에 이어 2005년 상하이 야외조각비엔날레에서 그는 그동안 응축한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다. 독일 쾰른 아트페어와 프랑스 파리 시립미술관 초대전까지 휩쓸며 한껏 물오른 '끼'로 글로벌 스타가 됐다.
"중국에 처음 갔을 때 작품이 매진돼 저도 놀랐어요. 한국에 있는 작품까지 다 사갔죠.상하이에서 야외조각비엔날레 때에는 멋모르고 4m짜리 대작을 냈어요. 그런데 이건 실수에서 비롯된 행운이었어요. '작품이 미리 다 팔렸으니 빨리 가져오라'는 소리에 달려 갔더니 조선족의 통역 오류였지 뭡니까. 전시회가 끝날 때가 되자 중국 측에서 협상이 들어왔어요. 이왕 가져 온 것 팔고 가라,한 점에 1억원,두 점에 1억5000만원,두 점 합쳐서 1억….속으론 애가 탔지만 이렇게 비굴하지 말자 마음먹고 지게차를 끌고 와서는 포장을 했죠.얼마 안 돼 전화가 왔어요. 상하이 문화발전기금회에서 긴급 회의를 하고 있으니 오후 3시까지만 기다려 달라고.3시30분쯤 전화가 왔는데 작품을 다 사겠다는 것이었어요. "
그해 상하이 아트페어에서는 '올해의 조각'으로 선정됐다. 강타이그룹 미술관에서는 평론가 15명이 모여 김씨와 프랑스 작가의 작품 중 어느 것을 사느냐 토론 끝에 그의 작품을 사기로 결정했다. 이듬해 쉬훼이미술관과 닝보미술관에 전시한 작품 38점은 한 점도 빼놓지 않고 다 구매했다. 지금 중국에서 그의 작품값은 대작 한 점에 4억~5억원.국내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최소 3배 이상 높다.
인기 비결은 뭘까. 그는 "한마디로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말했다. 말이나 소,인체 조각에 동양화의 필선을 생생하게 구현한 것이다.
"'기운생동'은 동양화의 근본 중 근본이죠.음과 양의 조화에서 나오는 힘찬 기운.중국 사람들은 특히 생동감 있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말의 힘줄과 근육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도 고아한 예술성을 완벽하게 접목하는 것.그들이 제 작품을 보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게다가 동양적 정신과 서양적 기술이 조화를 이룬 게 더 먹혀든 거죠."푸이안 중국미술원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밭을 갈아놓고 뭘 심어야 할지 모를 참에 정말 좋은 씨앗을 갖다줬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운생동'의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그는 "조각을 오래 할수록 새로운 에너지가 더 생긴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작업을 해도 지치지 않고,어른이 되어서도 가만히 놀지 못하는 습성이 몸에 뱄다는 것.옆에서 봐도 타고난 강단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에 빠졌죠.대학도 가정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이 3만4000원밖에 안 되던 국립 부산대,그 중에서도 사범대에 입학했어요. 대학 2학년 때 조소에 미쳤죠.흙맛을 본 겁니다. 진짜 살아있는 느낌,자식을 만드는 기분이었어요. 남들이 두상 하나 만들 때 저는 두상,흉상,반신상까지 만들었죠.그래서 조각을 전공하게 됐고 졸업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평생 조각의 길을 닦았죠."
그는 지난 15일부터 내달 8일까지 갖는 전시회 관계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동안에도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주 '강단 있는' 폭탄주를 즐긴다. 그가 즐기는 것은 늦게까지 조각을 끝내고 귀가해 홀가분하게 즐기는 '간단한 반주'.그러나 그와 친해진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 간단한 반주가 사실은 수십 가지에 달하는 '명품 폭탄주'라는 것을.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선화랑·세종문화회관에 전시…4m 대형 조각도
"말 조각가로 불리는건 싫어…다양한 소재 선보여"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달려나갈 것 같은 말발굽과 갈기,옹골찬 황소의 등줄기,큰 손등 위에서 창을 들고 서 있는 남자….
내달 8일까지 계속되는 김선구씨의 조각전에는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브론즈 작품들이 출품됐다.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에는 4m짜리 대형 조각이 5점 설치돼 있고 인사동의 선화랑에는 이보다 작은 작품 20여점이 전시돼 있다. 이른바 시민과 함께하는 조각전이다.
김씨는 "그동안 제가 말조각만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조각가로선 그리 달갑지 않다"고 했다. 그의 작품 중 말조각은 4분의 1밖에 안 되는데도 워낙 말 작품으로 유명해서인지 사람들이 그렇게만 인식한다는 것."이번 작품을 보시면 알 겁니다. 말,소,손,창을 든 사람,우산 쓴 사람 등 다양한 소재를 선보였죠.중국 사람들도 동물 조각만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도 여러 가지 형태들을 좋아해요. "
세종문화회관을 지나는 관람객들은 우선 작품의 크기에 놀라고,또 역동감과 청동 재질에 놀란다. 이만한 조각을 흔히 볼 수 없었는 데다 한 작가의 작품을 5점이나 한꺼번에 비교해서 관람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인사동 사거리에 있는 선화랑의 관람객 반응도 마찬가지다. 17일 이곳을 찾은 직장인 이현주씨(34)는 "김선구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강한 힘이 느껴진다"며 "중국에서 왜 그토록 유명한지 직접 작품을 보니 알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