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부자들 일부가 서울 강남 중소형 빌딩이나 급매로 나온 아파트를 발빠르게 매입하고 있다. '부동산으로 돈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이 득세하는 요즘이지만 이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시장 침체기를 우량 물건을 저가에 매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강남권 핵심 지역에 자리잡은 중소형 빌딩과 아파트는 대표적인 안정자산이어서 더 떨어지기 어렵고,경기 회복기에 가장 큰 폭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믿음이 베팅의 배경이다.

◆빌딩 한 채는 있어야

빌딩 전문 컨설팅 업체인 ERA코리아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으로 강남 · 분당권에서 거래된 빌딩(연면적 991㎡ 이상 또는 5층 이상 빌딩 기준)은 총 35건이다. 지난해 하반기 25건보다 40% 증가했다. 이 중 개인이 사들인 빌딩은 12건이다.

김일수 씨티은행 부동산팀장은 "최근 현금을 들고 중소형 빌딩과 급매 아파트를 찾는 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한동안 부동산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전했다.

빌딩시장 전문가들은 강남 중소형 빌딩 매입 열기가 내년 초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장진택 ERA코리아 전략기획팀 이사는 "가격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매수 시기를 늦추던 매수 대수자들이 실제 가격이 떨어지지 않자 서서히 매수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내년 초께 거래 건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개인 자산가들이 이처럼 강남 중소형 빌딩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강남 중소형 빌딩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입지를 굳혔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뷰티,고품격 인테리어 업체나 고급 레스토랑 등의 실수요가 강남 중소형 빌딩 임대시장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불황기에도 가격이 강한 하방 경직성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빌딩 매매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소강 국면을 보이고 있으나 다른 부동산에 비해서는 불황 여파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모습이다.

때문에 부동산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서면 가장 먼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빌딩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강남 상가의 임대수익률이 5% 미만이라고 해도 투자자들은 안전한 자산이란 인식이 강한 편"이라며 "강남권 빌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 보유하려 하고 있는 반면 대기 수요도 그만큼 많아 물건이 귀하다"고 말했다.

◆강남권 아파트도 저가 매수 유입

강남권 아파트 급매물도 추석을 전후해 소진되는 분위기다.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평균 1억원 가까이 떨어진 급매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 6억9000만원 선에 거래됐던 잠원동 훼밀리 전용 85㎡는 최근 6억1000만원에 팔렸다. 올해 1월 최고가는 7억6500만원이다. 연초 대비 1억5000만원 가까이 빠진 셈이다. 삼성동에서는 40평형대가 30평형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최근 거래된 삼성동 풍림1차 142㎡(43평)의 매매가는 8억6000만원이다. 이는 지난 7월 거래된 109㎡(33평)와 가격차가 4000만원에 불과하다. 삼성타운공인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매입 시기를 저울질하던 실수자들이 1년 정도 지켜보다 지금을 저가 매수 타이밍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최고가 대비 가격이 2억~3억원씩 빠진 재건축 단지에도 '입질'이 시작됐다. 개포 주공 1단지 43㎡(13평)는 추석 연휴 직후인 24일 7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7월 14억2000만원에 거래됐던 개포 주공2단지 82㎡도 이날 3억원 가까이 싼 11억9000만원에 매매됐다. 10년 이상 이 집을 보유하던 집주인이 재건축을 통해 40평형대로 갈아타려는 40대 부부에게 팔았다.

최근 부동산을 매입하는 강남 부자들은 단기적인 시세차익보다는 장기적인 투자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고 일선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또 무리하게 대출을 끼고 투자하기보다는 현금을 가지고 투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개포동의 E공인 관계자는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사면서도 대출없이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