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서울남부지방법원 406호 법정에는 두 배심원단이 있었다. 재판에 의견을 내는 배심원과 '그림자 배심원(shadow jury)'이 주인공이다. 지난달 도입된 그림자 배심원들은 진짜 배심원과 달리 재판에 의견을 내지 않고 참관한 뒤 모의 평결하는 체험단이다.

이날 숙명여대 법학과 학생과 기자 12명은 출소 한 달 만에 또다시 야간에 취객 등의 지갑과 돈을 훔치거나 빼앗은 혐의로 기소된 송모씨의 재판에 그림자 배심원으로 참여했다. 쟁점은 송씨의 범죄 중 2건에 '폭행이나 협박 등으로 남의 재물을 빼앗은' 강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송씨와 변호인은 "(송씨가) 오른팔을 다쳐 피해자들을 힘껏 밀어 넘어뜨릴 수 없었던 상황으로,피해자들은 뿌리치는 과정에서 스스로 넘어진 것"이라며 절도 혐의만을 인정했다.

하지만 증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A씨와 B씨의 말은 달랐다. 피해자들은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건장한 체구의 누군가가 밀쳐 넘어뜨린 다음 주머니 속 지갑을 빼앗아 갔다","이후 길게는 2주일 이상 뒤통수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니 머리를 맞은 것 같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주심은 송씨를 향해 "팔을 움직여 보라","1년 넘게 팔을 못 썼다면 양팔 근육량이 다를 테니 소매를 걷어 보여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림자 배심원으로 참가한 기자 또한 피고인과 변호인,피해자와 검찰의 공방을 예의주시하다 보니 다른 이들의 의견이 궁금해졌지만,평의 · 평결 전 사건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 행동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호기심을 자제해야 했다.

검사의 구형 후 자리를 옮겨 진행된 유 · 무죄 여부와 양형에 대한 평의 · 평결에서는 "송씨의 양팔 근육량 차이가 없어 보이더라","피해자의 증언에 부정확한 부분이 있다" 등의 논의가 오갔다. 동석한 박석근 판사가 "사실 판단은 취사선택의 문제"라고 한마디 거들자 그림자 배심원들은 다시 고민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의견이 재판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해도,타인의 일을 판단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컸던 탓이다. 의견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오전 10시에 간단한 설명으로 시작한 그림자 배심원 활동은 오후 8시30분 송씨의 강도 혐의까지 인정해 재판부가 징역 5년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림자 배심원으로 참가한 오소희씨는 "사람의 죄를 묻고 따진 뒤 양형을 결정하는 게 특히 어려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