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환율전쟁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고 있다. 15년 만의 엔고로 코너에 몰린 일본이 총구를 한국으로 돌리면서 원화 견제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삼는가 하면,원화 매입을 통한 원고 유도를 검토하는 등 공세를 펴고 있다. 다음 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환율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한국을 난처하게 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원화에 대한 일본의 선전포고는 지난 13일 간 나오토 총리가 직접 했다. 간 총리는 이날 국회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특정국이 자기 나라의 통화 가치만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도하는 것은 G20 협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도 공통의 룰 속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은 더 공격적으로 나왔다. 같은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은 원화 환율에 수시로 개입하고 있다"며 "한국은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그 역할을 엄하게 추궁당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익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즉각 나카오 다케히코 일본 재무성 국제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고 "정치인 출신인 재무상이 실무진이 준비하지도 않은 답변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는 해명을 들었다. 일본 정부는 간 총리와 노다 재무상의 '한국 공격'이 우발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의도된 공격이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원화를 대량 매입하는 방안을 한때 검토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은 일본 자동차와 대형 전자업체들의 요구로 재무성에 원 · 엔 환율을 낮추기(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 인하) 위한 시장개입 검토를 요청했다.

일본 업계는 진작부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의 승승장구는 낮은 원화 가치 덕분이란 주장을 펴왔다. 일본 기업들은 사상 최고치에 육박하는 엔고에 시달리고 있는 데 반해 한국 기업은 정부의 환율정책 덕에 땅 짚고 헤엄치는 경쟁을 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도요타자동차 관계자는 "최근 원화 가치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지난 3개월간 상승률은 8%에 그쳤다"며 "실질실효환율로 보면 원화는 2007년 1월과 비교해 25% 하락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11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이 뜨고 있는 한국에 대한 시기심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일본이 주최하는 아시아 · 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시기적으로 G20 서울회의에 이어 열리면서 국제무대에서 뒷전으로 밀린 일본이 한국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란 얘기다.

한국 외환당국은 일본의 '물귀신 작전'에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14일 "환율 문제에 대해 특정 국가가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걸고 넘어지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방증이며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환율전쟁과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G20 회의 틀 안에서 논의해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박준동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