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앤락'은 플라스틱 밀폐용기업체의 사명이자 브랜드이지만,때론 관련 제품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혼동하기도 한다. 웬만한 국내 가정과 식당의 냉장고 안에서 락앤락 제품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락앤락은 '안방 1위'에 안주하고 있지 않다. 세계 110개국에서 팔리고 있다.

락앤락(회장 김준일) 제품들은 얼핏 보면 아무 회사나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주방용품이다. 단순해 보이는 네모난 밀폐용기를 비롯해 플라스틱 물병,내열유리용기,수납상자 등이 주력제품이다. 그러나 회사 규모와 성장세를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락앤락은 지난해 2798억원(연결기준)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36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2003년 이래 매년 30% 이상 성장하며 국내 주방용품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세계 밀폐용기 시장에선 미국의 타파웨어,러버메이드에 이어 3위다. 외형만 큰 게 아니다. 올해 초 상장한 이 회사 주가는 3만7000원(액면가 500원)이 넘는다.

김 회장은 락앤락 주식의 53.54%인 약 2700만주를 보유하고 있는데 평가액만 1조원이 넘는 주식 부자다. 그가 락앤락의 전신인 하나코비를 창업한 것은 1992년이지만 지금과 같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출시한 것은 1998년이다. 불과 12년 만에 글로벌 밀폐용기 시장에서 락앤락을 '신예 강자'로 키워내고 자신은 대한민국 10대 부자에 올랐다. 김 회장이 '드림 메이커'로 불리는 까닭이다.

◆'심플 앤드 스피드'경영

김 회장은 대구에서 3남4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통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어릴 적 이사 갈 때는 소달구지 수십대가 따라 붙었고 집에 BMW 오토바이까지 있었다"는 게 김 회장의 회고다.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고달픈 10대를 보냈다.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마침 1978년 '수입자유화'조치가 발표됐다. 김 회장은 무릎을 쳤다. 당시 국산 주방용품이라고는 플라스틱 바가지밖에 없었고 주부들은 미군부대에서 불법 유통된 외산 주방용품을 쓰고 있었다. 그는 시장을 샅샅이 뒤져 주부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파악한 후 곧바로 통역 요원을 대동하고 미국,유럽의 주방용품 전시회를 휩쓸고 다녔다. 눈에 띄는 제품이 있으면 그날 밤 호텔에서 주문서를 작성해 바로 한국으로 실어 보냈다. 누구보다 빨리 해외 주방용품을 들여왔다. 한 달에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시장이 필요로 하면 바로 만들어 판다"는 김 회장의 '심플 앤드 스피드(simple & speed)'정신은 여기서 싹텄다.

◆위기는 새로운 성장을 위한 발판

1985년.그는 잘 나가던 무역회사를 접고 제조업을 시작했다. 장사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물건을 만들면 잘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 공장을 세우고 멜라민 용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조업은 장사와 달랐다. 당시 상대원동은 '노동운동의 전진기지'같은 곳이었다. 직원들은 툭하면 월급을 올려 달라며 파업에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엔화가 폭등해 일본에서 수입하던 원재료 값이 급등했다. 결국 무역으로 번 돈을 다 날리고 회사를 남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실패였지만 그는 낙심하기보단 교훈을 찾았다. 제품 하나 개발할 때마다 임금협상을 하면서 시간을 뺏기면 소비자의 니즈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유행이 자주 바뀌는 주방용품 시장에선 더 그랬다. 그는 "내가 잘하는 영업,마케팅,연구 · 개발(R&D)에만 집중하고 생산은 아웃소싱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 이어져 락앤락은 플라스틱 밀폐용기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제품을 아웃소싱한다.

2006년엔 '플라스틱 파동'이 김 회장을 흔들었다. 모 방송국이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든 용기에 음식물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환경호르몬이 나온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한 것.방송에서 검출된 환경호르몬은 자연상태에도 존재할 만큼의 미세한 양이었지만 소비자의 머릿속엔 "플라스틱 용기는 건강의 적"이라는 한마디만 각인됐다. 많은 사람들이 "락앤락은 끝났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그는 "끝나도 국내에서만 끝나는 거다"며 꿈쩍도 안했다. 대신 해외 법인을 돌며 현지 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덕분에 락앤락은 '내수 30%,수출 70%'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움이 계속되는 한 성장한다

락앤락이 만드는 제품은 독창적 아이디어는 있을지언정 엄청난 기술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복제할 수 있다. 어떻게 추격자들을 따돌릴까. 김 회장은 "끊임 없는 새로움의 추구"라고 잘라 말했다.

"소비자의 니즈는 빠른 속도로 변합니다. 그것을 읽고 빨리 상품화해야 합니다. " 김 회장을 비롯한 락앤락 직원들은 끊임 없이 현장을 누비며 시장조사를 해 소비자 수요를 파악한다. 그 다음이 포인트.100여명의 상품기획팀 직원들은 평균 4개월 만에 신제품을 뚝딱 만들어 낸다. 생산은 어차피 아웃소싱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신 락앤락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위해 무려 60개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어떤 형식의 제품이든 바로 주문할 수 있다. 하루 평균 2개의 신제품을 쏟아낸다.

안되는 사업은 빨리 접는다. 락앤락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플라스틱 밀폐용기지만 현재 이 제품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 정도다. 불과 4년 만에 절반으로 줄였다. 경쟁사들이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자 과감히 사업비중을 줄인 것.최근엔 400도이상의 오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내열유리용기 부문이 빠르게 커 나가고 있다. 아웃도어용 물병도 지난해 170억원어치나 팔려 나가며 '대박'을 예고했다. 올해는 랩,프라이팬,냄비,휴지통을 새로 내놨다.

◆'고급화'와 '현지화'로 해외시장 공략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중국에선 고급화로 승부수를 띄웠다. 김 회장은 2004년 중국 직영점 1호를 '중국의 청담동'이라 불리는 상하이 화이화이루에 열었다. 연간 임차료만 5억원에 달하는 핵심상권이다. 인근엔 명품 의류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서 김 회장은 오직 '메이드 인 코리아'제품만 팔았다. 당시 중국에 생산 공장을 갖고 있었지만 비싼 관세를 물면서도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만 팔았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마침 중국 중산층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명품 주방용품' 락앤락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현지화도 주효했다. 중국에서는 밀폐용기만큼이나 플라스틱 물병이 많이 팔린다. 항상 뜨거운 차를 가지고 다니는 중국 소비자를 위해 개발한 제품이다. 현재 중국 지역 매출은 락앤락 전체 매출의 40%에 이른다. 5년간 연 150%가 넘는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싶을 뿐

김 회장을 직접 대면하고 있으면 '화려함'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옷차림은 투박하다고 할 정도로 검소하다. 벨트와 구두는 국내 중저가 업체 제품을 착용한다. 골프도 일절 치지 않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인생의 목표를 "(남들의)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술(IT)분야에서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있기 때문에 관련 분야 중소기업인들이 보고 따라할 수 있지만 주방용품 분야에선 '닮고 싶은 회사'가 많지 않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주방용품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락앤락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성공한 인생일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