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세에 은퇴한 부부가 있다. 이들이 10년간 매달 200만원씩 생활비를 쓰고 물가상승률이 연 3.5%라고 가정한다면 2억원이 넘는 현금이 필요하다. 은퇴 후 20년을 살 경우 필요한 돈은 4억원이 넘어간다. 이처럼 거액의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은퇴 전 20~30년에 걸쳐 차근차근 돈을 불려나가는 '은퇴설계'를 서둘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자산의 대부분이 묻혀 있는 부동산 비중을 낮추는 대신 주식 · 펀드 투자를 늘려 목돈을 만들고,퇴직연금으로 노후생활비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동산 편중,장수리스크 높여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 비중은 지난 6월 말 현재 20.4%로,미국(64.9%) 일본(58.7%) 영국(45.2%)의 절반 미만에 불과하다. 비금융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탓이다. 그나마 보유 중인 금융자산 구성도 기형적이다. 금융자산의 46.6%는 현금과 예금이고,주식(18.7%) 펀드(5.4%) 채권(4.3%) 등 금융투자상품 비중은 다 합쳐도 30%에 못 미친다. 자산의 절반을 주식(30.6%) 펀드(11.8%) 채권(9.6%) 등에 골고루 투자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가계자산의 부동산 편중현상을 해소하지 못하고 은퇴하면 '하우스푸어(집 가진 빈곤층)'로 전락해 불행한 노후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동향실장은 "부동산시장 전망이 어두울 때는 주택의 자산가치조차 지킬 수 없다"며 "소득이 없는 노후에 가장 중요한 현금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부동산이 가진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100-나이' 투자법 활용

전문가들은 '하우스푸어' 신세를 면하기 위해 30대부터 은퇴 전까지 차근차근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주식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투자를 늘려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80% 수준인 부동산 비중을 60% 안팎으로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성모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연구소 상무는 "적은 돈으로라도 긴 시간 투자하면 복리효과가 발생하므로 은퇴 준비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집 크기를 줄이고 주식이나 주식형펀드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가장 간편한 은퇴 설계는 '100-나이' 투자법이다. 자산에서 생활비와 개인연금을 제외한 소득을 100으로 봤을 때 나이를 뺀 비중을 안전자산에,나머지를 금융투자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매달 수입이 300만원인 30대 직장인이라면 여유자산의 30%는 현금이나 채권에 묻어두고,70%(100-30세)는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면서 금리+알파(α)의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40대가 되면 금융투자상품 비중은 60%,50대가 되면 50%로 낮춰야 한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35% 수준인 만큼 퇴직연금을 통해 고정적인 노후생활비를 마련해놓는 것도 필수적이다. 퇴직연금의 유형은 퇴직급여가 사전에 확정되는 확정급여형(DB)과 운용 결과에 따라 지급되는 확정기여형(DC) 중에서 자신의 자산 규모나 연령에 맞게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손성동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은 "대부분의 자산이 부동산과 적금에 들어가 있다면 퇴직금을 DC형으로 들고,금융자산이 거의 없다면 안전한 DB형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상무도 "임금이 낮고 직급이 낮은 직원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퇴직금이 누적되기 때문에 DB형이,중견간부 이상이 가입할 경우에는 DC형이 좀 더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이기는 투자해야

소득이 없어지는 은퇴 후에는 매달 생활비를 최대한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모아둔 자산의 가치를 깎아먹지 않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이기는 투자를 해야 한다.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 구매력이 떨어지는 탓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은퇴 직후 종신지급형 변액연금과 투자상품에 함께 가입할 것을 조언한다. 즉 은퇴 후 목돈은 다달이 받는 연금으로 바꾸고,나머지는 연금을 받을 때까지 투자형 상품으로 운용하는 것이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퇴직연금교육센터장은 "연금을 받는 연령이 늦으면 늦을수록 연금지급액이 커지고 싼 가격에 연금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퇴할 때까지 부동산 비중을 크게 낮추지 못했다면 주택연금을 활용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 고령층이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금융회사에서 매월 생활비를 지급받는 제도다. 주택금융공사가 연금 지급을 보증한다는 점에서 일반 은행에서 취급하는 역모기지론과는 다르고,대출금리가 비교적 낮다. 다만 부부 모두 만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1세대 1주택 보유자만 가입할 수 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