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 소리 왁자지껄하던 그 때,변변한 땅뙈기 하나 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 조 영감의 집도 시골 동리의 주인공이 되는 날들이 몇 번 있었다. 큰 아들 장가 보낼 때,그리고 본인이 환갑일 때 그랬다. 동네 유지인 조합장도 영감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마당의 차양 밑에 앉아 막걸리 잔을 비웠다. 비루 먹은 강아지 같던 그 집 아이들도 이 날만은 친구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댔다.

손님을 맞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자부심이 거기에 있다. 때론 그것이 너무 분수에 지나쳐 문제가 되기도 하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느끼는 존재의식은 비용으로 따질 수 없는 자존감이라는 자산이 된다.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지구촌의 내로라 하는 국가들의 수장이 모인 자리다. 그런데 이 모임이 잘 끝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G20의 'G'가 '탐욕(Greed)'의 이니셜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 화려한 레토릭 뒤에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국가 이기주의를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몇 가지 사례들은 별로 좋지 않은 징조이다. 달러화 찍어내기로 환율 전쟁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받는 오바마 행정부의 결정은 지구촌 차원의 문제라 잠시 접어두더라도,당장 우리 국회에 계류 중인 대 · 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안(상생법)에 대해 공식적인 비판 의사를 밝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태도에서는 '내 먹을 건 일단 다 먹은 뒤에 보자'는 심산이 엿보인다.

'Think Small First(작은 것을 먼저 생각하자).' 얼핏 보면 우리의 상생법안의 정신을 담고 있을 법한 이 말은 EU 집행위원회가 2008년 6월 채택한 이른바 소기업법(Small Business Act)의 공식 캐치프레이즈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기업은 250명 이하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자들로서,역내 전체 사업자의 99%를 차지한다. 우리의 상생법 및 재래시장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배려하고자 하는 소기업이나 영세상인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EU는 이런 기업들을 고용과 성장,그리고 사회통합의 핵심으로 간주해,2005년부터 고용과 성장 전략의 주요 의제로 삼아 왔다. 이에 따라 2008년 소기업법 정책안을 만들어 공표한 뒤 집행위원회를 통해 지난 해 12월 추진 상황 보고서를 발간하고,올해 12월 중 다시 종합적인 의견서를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 이 정책 중 당장 역외 국가에서 문제 될 만한 것은 이들 기업이 공공조달에 참여할 때 유리한 기회를 부여하고,일반적으로 금지돼 있는 정부 보조금 시행에 있어서도 일괄 면책 대상으로 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만큼 자유교역 정신에 반하는 것이 어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EU 측은 자신들의 이런 정책은 놔둔 채 이번 G20 회의에서 한국의 유통법 및 상생법안에 대해 보호무역주의로 지적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우여곡절 끝에 상생법안의 쌍둥이인 유통법만이 며칠 전 국회를 통과하고 상생법안 처리가 이달 25일로 미뤄진 것도 유럽연합과 영국의 반대 때문이었다.

여기에 EU 의회는 우리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무력화하는 내용의 긴급수입제한조치에 관한 법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키고 이달 23일 본회의 최종 표결을 앞두고 있다. 우리로서는 동시다발적인 억지 포화를 맞고 있는 셈이다.

'주요 20개국(Group of Twenty)'이 '탐욕 20개국(Greed of Twenty)'이라는 오명을 얻지 않으려면 G20 중에서도 큰 국가들이 상식에 부합하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호선 < 국민대 교수·통상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