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11 옵션쇼크'는 국내 파생상품 관련 제도의 허점들을 한꺼번에 노출했다. '거래량 세계 1위'를 과시하던 옵션시장이 불과 10분 만에 증시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지뢰밭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당국은 2조원이 넘는 초대형 '매물폭탄'이 터질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만기일 동시호가에 모든 게 결정되는 결제 기준,느슨한 증거금 제도 등을 이번 기회에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래 활성화 미명 아래 위험회피 외면

우선 거래소가 옵션시장의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 위험 회피 제도를 안이하게 운영했다는 비판이 많다. A증권 연구원은 "적격기관투자가의 파생거래 편의성을 높여준다는 취지 아래 증거금제도를 점차 완화했고 감독규정도 유명무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거래소 규정상 증권사들은 결제 이행 능력이 충분하다고 인정되는 '적격기관투자가'에 사후 증거금을 매길 수 있다. 기관들은 손실이 확정될 때까지 증거금을 내지 않아도 돼 풋옵션 매도 같은 고위험 투자를 서슴없이 해 온 게 사실이다.

◆동시호가 10분이 운명 갈라

지난 11일 옵션만기일에 와이즈에셋은 풋옵션 매도로 888억원의 손실을 봤다. 장 마감 직전인 동시호가 10분(오후 2시50분~3시) 만에 지수가 폭락하자 손 쓸 기회조차 없었다. B증권 파생담당 임원은 "옵션 결제 기준인 코스피지수가 만기일 현물시장 동시호가에서 결정되는데 지수옵션은 오후 2시50분에 거래가 끝나 현물시장 움직이는 것을 손놓고 봐야 한다"고 토로했다.

결제 기준도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동시호가 제도란 일정 시간에 제출된 모든 주문을 동시에 제출된 것으로 보고 단일가로 체결하는 방법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동시호가는 장 시작과 막판 시세 급변을 막기 위한 제도지만 상 · 하한가 주문을 냈다가 빼는 방식으로 시세 조작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홍콩에선 만기일 장중 지수 움직임을 5분 간격으로 반영해 결제 기준으로 삼는다. 국내에서도 주식워런트증권(ELW)은 만기일을 포함해 5일 평균 종가로 정산한다. 국내 옵션시장도 이런 식으로 운영됐다면 이번 같은 충격은 예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경보제도 있으나 마나

만기일의 특성상 돌발 변수가 있을 때 사전 경고가 필수적임에도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투자자가 만기일 동시호가에 프로그램 매매를 실시할 때 오후 2시45분까지 신고하도록 한 '선샤인 제도'(동시호가 매매 사전 신고 제도)도 동시호가 직전에 신고가 몰려 실효성이 없었다. 시간을 넘겨 늑장 신고해도 최대 200만원인 약식 제재금만 물면 그만이다.

만기일의 중요한 척도인 차익거래 잔액 집계도 꾸준히 문제가 지적된다. 외국사의 경우 주문 창구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차익 · 비차익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등 빈틈이 많다. 왜곡된 정보를 제공할 바에는 집계를 아예 없애거나,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1 · 11 쇼크'의 진앙지였던 차익거래시장에선 올해부터 증권거래세가 부과되면서 국내 기관들이 대거 빠져나가 외국인의 독무대가 됐다. 거래세율을 차익거래와 비차익거래 등 목적별로 차등화하거나,국민연금 등 일부 연기금은 비과세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