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화 명작 기행] 에게해를 떠돌던 영웅의 설움…잔잔한 빛이 위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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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풍경화의 거장 클로드 로랭 '델로스섬의 아이네아스가 있는 풍경'
인문주의 싹트며 풍경화 출현
고전주의 모델 창시…공간감·빛 표현 독특
후기 풍경화에선 그리스신화 담아내
인문주의 싹트며 풍경화 출현
고전주의 모델 창시…공간감·빛 표현 독특
후기 풍경화에선 그리스신화 담아내
내가 처음 만난 서양화는 풍경화였다. 그 첫 경험의 장소는 미술관이 아닌 동네 이발소였다. 이발사 아저씨의 예리한 이발기계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더부룩하게 자란 내 머리카락을 잔디 깎듯 사정없이 밀어버릴 때 내 마음을 진정시켜 준 것은 뜻밖에도 머리맡에 걸려 있던 '이삭줍기''만종' 등 밀레의 그림이었다.
추락한 머리카락이 벌침이 되어 목과 등을 사정없이 찔러도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던 그 짧지만 혹독했던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바로 그 난생 처음 보는 세계를 묘사한 풍경화였던 것이다.
그림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서 갖가지 의문과 상상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그깟 벌침쯤이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그 풍경화는 내 마음의 진정제였다.
서양에서 풍경화가 출현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였다. 동양의 산수화가 2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데 비하면 의외다. 자연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던 서양에서 자연은 오랫동안 그저 인간사를 묘사하는 데 있어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인문주의가 싹트면서 사람들은 이제까지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삶의 무대인 자연에 비로소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자연은 동양인들이 떠올리는 야생의 자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길이 닿은 자연,곧 문명화된 자연이었다. 따라서 풍경화도 동양처럼 산수 위주의 원시적 자연을 묘사해서는 곤란했다. 야생의 자연은 서구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악의 무리가 서식하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무리들이 어디에 서식하는지를 생각해보라.인간문명으로 침을 바른 그런 자연을 그려내야만 풍경화로 인증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로마에서 활동한 니콜라 푸생과 클로드 로랭은 그런 기준 아래 서양 풍경화의 고전적 모델을 창시한 화가들이다.
푸생의 풍경화가 엄격한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열정을 묘사한 영웅적 풍경화라면 로랭의 풍경화는 시적인 정서가 넘치는 서정적 풍경화다. 동양인의 마음은 아무래도 잰체하는 푸생의 풍경화보다는 말랑말랑한 로랭의 풍경화에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로랭은 프랑스 로렌 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에 부모를 여읜 그는 제과기술을 배운 후 로마에 건너가 그곳에서 당대 원근법의 일인자인 아고스티노 타시의 요리사가 된다. 타시가 작업하는 모습을 본 로랭은 그림이야말로 자신의 천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깨 너머로 풍경화 기법을 터득한다.
우연히 로랭의 그림을 본 타시는 비범한 재능을 발견하고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근면함으로 면학에 힘써 교양인으로서 결코 손색이 없는 학식을 갖췄다. 서구 풍경화의 거장은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로랭의 풍경화는 화면에 넘쳐흐르는 독특한 빛의 효과로 유명하다. 빛을 잔뜩 머금은 앞부분의 대기는 맑고 투명하게 묘사되며 대상도 선명하게 채색된다. 또 뒤로 후퇴할수록 명도와 채도가 미묘하게 감소되면서 저 멀리 아득한 공간감을 유도한다. 여기에 잔잔한 붓의 터치가 가해져 어머니 품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대지의 느낌이 화면을 감싼다.
쉰 고개를 넘어서면서 그는 그리스신화의 세계를 풍경 속에 구현한다. 그가 만년에 그린 '델로스섬의 아이네아스가 있는 풍경'은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 '아이네이스'(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를 토대로 제작한 여섯 점짜리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아이네이스'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트로이 멸망 후 부하들을 데리고 크레타섬 델로스섬 시칠리아섬 등을 떠돌다가 마침내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상륙,로마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망국의 설움을 뒤로 한 채 에게해를 방랑하던 영웅이 델로스섬에 도착한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령 키클라데스제도에 속해 있는 델로스섬은 그리스신화 속의 아폴론이 태어난 곳으로 오래 전부터 아폴론 신앙의 중심지였다. 작은 섬이지만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인해 아폴론 신전을 비롯한 신전과 야외극장,시장 등이 세워졌다. 게다가 에게해의 한가운데라는 지정학적인 이점 덕분에 오랫동안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이제는 주민 14명만이 거주하는 사실상의 무인도로 이따금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기둥만 남은 폐허 위에서 흘러간 옛 영화를 되새길 뿐이다.
그림은 바로 옛 황금시대를 재현한 것이다. 오른쪽 앞부분 신전 왼쪽에 모여 있는 무리들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맨 왼쪽의 인물은 섬의 통치자인 아니우스이고 그 오른쪽의 푸른색 토가를 걸친 이가 아이네아스의 아버지인 안키세스,그 오른쪽의 노란색 옷을 걸친 자가 영웅 아이네아스다.
도리아식의 신전 뒤로 '만신전'인 판테온이 장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망루와 또 다른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다. 판테온 왼쪽의 바다 위에는 배들로 북적대는 항구가 자리해 있고 해안가를 따라 난 도로 중앙에는 성스러운 나무인 올리브와 종려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이 장엄한 세트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따뜻한 햇볕이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로랭이 마련한 고요하고 장엄한 세트 위에서 망국의 시름을 잊고 희망을 얘기하는 듯하다.
잊혀진 고대라는 시간적 거리감,섬이라는 공간적 격리감,현실과는 거리가 먼 신화의 세계여서일까. 그림을 보노라면 까닭모를 안도감이 마음 가득 밀려온다. 로랭 풍경화가 거둔 성공의 비밀은 바로 마음의 위안에 있다. 스트레스받은 당신,오라 로랭의 풍경화 속으로.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추락한 머리카락이 벌침이 되어 목과 등을 사정없이 찔러도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던 그 짧지만 혹독했던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바로 그 난생 처음 보는 세계를 묘사한 풍경화였던 것이다.
그림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서 갖가지 의문과 상상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그깟 벌침쯤이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그 풍경화는 내 마음의 진정제였다.
서양에서 풍경화가 출현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였다. 동양의 산수화가 2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갖고 있는 데 비하면 의외다. 자연보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던 서양에서 자연은 오랫동안 그저 인간사를 묘사하는 데 있어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다.
인문주의가 싹트면서 사람들은 이제까지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삶의 무대인 자연에 비로소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양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자연은 동양인들이 떠올리는 야생의 자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손길이 닿은 자연,곧 문명화된 자연이었다. 따라서 풍경화도 동양처럼 산수 위주의 원시적 자연을 묘사해서는 곤란했다. 야생의 자연은 서구의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악의 무리가 서식하는 위험한 공간이었다.
톨킨의 소설을 영화화한 '반지의 제왕'에서 악의 무리들이 어디에 서식하는지를 생각해보라.인간문명으로 침을 바른 그런 자연을 그려내야만 풍경화로 인증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로마에서 활동한 니콜라 푸생과 클로드 로랭은 그런 기준 아래 서양 풍경화의 고전적 모델을 창시한 화가들이다.
푸생의 풍경화가 엄격한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열정을 묘사한 영웅적 풍경화라면 로랭의 풍경화는 시적인 정서가 넘치는 서정적 풍경화다. 동양인의 마음은 아무래도 잰체하는 푸생의 풍경화보다는 말랑말랑한 로랭의 풍경화에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로랭은 프랑스 로렌 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에 부모를 여읜 그는 제과기술을 배운 후 로마에 건너가 그곳에서 당대 원근법의 일인자인 아고스티노 타시의 요리사가 된다. 타시가 작업하는 모습을 본 로랭은 그림이야말로 자신의 천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깨 너머로 풍경화 기법을 터득한다.
우연히 로랭의 그림을 본 타시는 비범한 재능을 발견하고 제자로 받아들인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타고난 근면함으로 면학에 힘써 교양인으로서 결코 손색이 없는 학식을 갖췄다. 서구 풍경화의 거장은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로랭의 풍경화는 화면에 넘쳐흐르는 독특한 빛의 효과로 유명하다. 빛을 잔뜩 머금은 앞부분의 대기는 맑고 투명하게 묘사되며 대상도 선명하게 채색된다. 또 뒤로 후퇴할수록 명도와 채도가 미묘하게 감소되면서 저 멀리 아득한 공간감을 유도한다. 여기에 잔잔한 붓의 터치가 가해져 어머니 품같이 부드럽고 포근한 대지의 느낌이 화면을 감싼다.
쉰 고개를 넘어서면서 그는 그리스신화의 세계를 풍경 속에 구현한다. 그가 만년에 그린 '델로스섬의 아이네아스가 있는 풍경'은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 '아이네이스'(아이네아스의 노래라는 뜻)를 토대로 제작한 여섯 점짜리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아이네이스'는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트로이 멸망 후 부하들을 데리고 크레타섬 델로스섬 시칠리아섬 등을 떠돌다가 마침내 이탈리아의 라티움에 상륙,로마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망국의 설움을 뒤로 한 채 에게해를 방랑하던 영웅이 델로스섬에 도착한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령 키클라데스제도에 속해 있는 델로스섬은 그리스신화 속의 아폴론이 태어난 곳으로 오래 전부터 아폴론 신앙의 중심지였다. 작은 섬이지만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인해 아폴론 신전을 비롯한 신전과 야외극장,시장 등이 세워졌다. 게다가 에게해의 한가운데라는 지정학적인 이점 덕분에 오랫동안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이제는 주민 14명만이 거주하는 사실상의 무인도로 이따금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기둥만 남은 폐허 위에서 흘러간 옛 영화를 되새길 뿐이다.
그림은 바로 옛 황금시대를 재현한 것이다. 오른쪽 앞부분 신전 왼쪽에 모여 있는 무리들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맨 왼쪽의 인물은 섬의 통치자인 아니우스이고 그 오른쪽의 푸른색 토가를 걸친 이가 아이네아스의 아버지인 안키세스,그 오른쪽의 노란색 옷을 걸친 자가 영웅 아이네아스다.
도리아식의 신전 뒤로 '만신전'인 판테온이 장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뒤로 망루와 또 다른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다. 판테온 왼쪽의 바다 위에는 배들로 북적대는 항구가 자리해 있고 해안가를 따라 난 도로 중앙에는 성스러운 나무인 올리브와 종려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이 장엄한 세트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따뜻한 햇볕이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로랭이 마련한 고요하고 장엄한 세트 위에서 망국의 시름을 잊고 희망을 얘기하는 듯하다.
잊혀진 고대라는 시간적 거리감,섬이라는 공간적 격리감,현실과는 거리가 먼 신화의 세계여서일까. 그림을 보노라면 까닭모를 안도감이 마음 가득 밀려온다. 로랭 풍경화가 거둔 성공의 비밀은 바로 마음의 위안에 있다. 스트레스받은 당신,오라 로랭의 풍경화 속으로.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