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우리 선수들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메달 수로도 2위지만 수영을 비롯한 많은 종목에서 보란 듯이 일본을 누른 것이다. 일본 내에서조차 왜 한국을 배우지 못하느냐고 자책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한다. 비록 운동경기이긴 하지만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가 있은 지 꼭 100년이 된 시점에 듣는 승전고라 기분이 묘하다.

운동경기만큼 온 국민의 관심을 한쪽으로 결집시키는 구심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상대가 일본이라면 물어볼 것도 없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중에는 상대가 일본이라는 이유로 그 결과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일본을 보는 시각에 냉정함을 잃게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일본은 가깝기도 하지만,누구나 가보고 싶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비슷하고 음식이 입맛에 익은 것도 그렇고,치안 상황도 믿음직스러워 머무르는 동안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리고 경제 성장이 둔화되긴 해도 여러 가지로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 엔고 장벽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일본을 자주 찾는다.

이렇게 교류가 많은 일본을 생각하며 머릿속에 떠올리는 상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람들에게는 지금까지도 무언가 속내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나,이쪽의 가슴속 응어리를 애써 외면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엉뚱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침저녁으로 밥상에서 마주하는 도자기 그릇을 보면서 일본을 떠올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도자기에 얽힌 지난날의 역사에 생각이 미치면 온갖 회한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임진왜란 당시 도자기 선진국 조선에서 끌려간 도공들은 적지인 일본에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아남았을까,장인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는 걸 고마워하며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을까….

무엇보다도 일본이 조선의 도공들을 활용해 도자기를 수출상품으로 키워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17세기 명(明)이 쇠하고 청(淸)이 들어서는 혼란기에 중국 내 생산기지였던 경덕진(景德鎭)이 오랫동안 폐쇄되고 도자기 수출이 중단되자 일본 도자기가 그 공백을 메운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을 그들이 가로챈 것이라고 할까. 19세기 말 일본이 메이지유신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며 근대화에 앞설 수 있었던 것은 도자기 수출로 축적된 자본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앞선 근대화가 조선 침략으로 이어진 걸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머지않아 조선왕조의궤가 일본에서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반환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이런 반가운 소식을 들을 줄이야.그렇지만 국보로 대접받으면서 일본 내 박물관 등지에 모셔져 있는 우리의 도자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조선 도공의 한이 서려 있는 그 도자기들이 제자리를 찾는 날은 언제쯤일까.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