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아들들아, 전선에서 돌아오라"
우리 군의 전투력을 놓고 50대의 중늙은이들이 토론하고 있다. 중년 세대의 감성은 곧바로 "요즘 군대에는 얼차려도 없다는데…"는 탄식으로 이어진다. 원산폭격도 없고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앞뒤로 취침도 없다는 것이다. 사격 훈련도 없다는 말에는 술자리 좌중이 일제히 '뭐라꼬?'를 내지른다. 안전 사고 때문에 직업 하사관들이 총을 대신 쏘고 탄피만 모아 사격훈련을 한 것처럼 보고한다는 말에는 '에이 그럴리가!'라는 거친 반응들이 자동적으로 튀어 나온다. 군에 있는 자식 면회 다녀온 이야기들이며 과거의 군대시절을 회고하는 말들은 결국 이래 가지고서야 군이라고 하겠는가라는 탄식으로 귀결된다.

군대 이야기도 그렇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더욱 그렇다지만 중늙은 세대의 긴 이야기들은 술잔을 쌓아가면서 분노 또한 쌓이고 있다. 아마 회식자리에서 쏟아지는 이런 말들 중에는 카더라 식의 과장과 오해도 분명 적지 않게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면 요즘 군대의 속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연유야 어떻든 사소한 사고라도 나면 장교의 직업 평생은 치명적 오점으로 되는 상황에서 군기보다 인권이 중요하고 전투력보다 사고방지가 더 중요한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이는 '엄중하게 대응하되 확전하지는 말고…'라는 말만큼이나 모순적이다. 거기에 햇볕이니 화해니 남북협력이니 민족공존 등의 마약들이 온통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유와 그것을 지킬 군의 존재 가치를 부정했던 10년 세월을 지나온 터다. 더러워서 피해왔던 거짓 이데올로기들이 교실과 TV에서까지 확성기를 더 크게 울려댄 기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군 복무 중인 아들아! 아비와 임무 교대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제 자식의 안위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전쟁이 무서워서도 결코 아니다. 오로지 국민 소득 2만달러에 키운 자알 생긴 한국의 청년들을 김정일 같은 허무하게도 낡아빠진 봉건 미치광이의 상대로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세계로 나아가 지식으로 싸우고 신산업으로 경쟁하고 국제 무대에서 재주를 과시하는 것은 굳이 박태환과 김연아가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의 청년들이 도달해 있는 평균적인 수준이다.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똑똑한 젊은이가 바로 한국의 청년들이다. (북한은 가장 작다!)

건국 이후 지난 60여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이루어낸 오늘의 성취를 한낱 김정일 따위에 내줄 수 없고 낡은 질투심의 희생자로 만들 수는 없지 않나. 때문에 '아들아 돌아오라, 전선에는 내가 나가겠다'고 하소연하고 싶은 것이다. 낡을 대로 낡아 이제 무너져 쓰러지기 직전인 김정일의 상대로는 차라리 모진 개발연대를 거칠게 살아온 우리가 어울린다는 생각, 철 지난 남북대결의 시대는 우리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통일 한국의 소명은 우리 세대가 기어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드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고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의무감도 마찬가지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동포 아닌 김정일을 옹호하고 핵개발을 용인하며 심지어 간첩짓까지 했다고 의심받는,정신착란이며 가치의 무정부주의자들이며 지적 백치인 자들이 우리 사회에 통일세력으로 위장해 왔던 것도 이제는 종식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이번에 우리가 응전했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불렀다"는 어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폭행을 당한 여인에게 가만히 있었을 것을 책망하는 그런 도덕의 정신분열자요 정의감의 부재증명이 정치인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햇볕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스스로 인질화했던 오류도 이제는 끝내야 마땅하다.

"아들들아, 너희들은 돌아와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라, 낡은 망령과의 싸움은 우리 세대로 끝내겠다. "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