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간의 타고난 이중성을 둘로 나눌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쁜 면을 좋은 면에서 떼어내 두 부분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거의 다 찾았죠,해답을.과학적 시학의 개발까지.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고 선악을 선택할 수도 있죠."

정신병동 수감자의 임상실험을 허락해 달라며 노래하는 지킬 박사(조승우 · 사진)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럽다. 그러나 이사회는 거절한다. 엠마와의 약혼식 파티를 마치고 돌아온 지킬은 정신병을 앓는 아버지의 초상화를 한참 바라보다 마침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선택한다.

"11시50분 새롭게 제조한 주사제를 몸속에 주입하자 혈관을 타고 퍼지는 듯한 뜨거운 느낌…(중략).하나님 맙소사.갑자기 숨통이 막혀 와.내 몸에 뭔가 차올라."

핏빛 주사제를 맞고 연구실 바닥에 뒹구는 지킬은 단정히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이드로 변신한다. 괴기스러움이 그의 몸짓과 표정,목소리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숨죽이던 관객들이 탄성을 지른다.

조승우씨(30)가 군복무를 마치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복귀했다. 뚜껑을 열기 전부터 반응이 뜨겁더니 지난달 말 개막 이후 연일 매진이다.

오디뮤지컬컴퍼니와 CJ엔터테인먼트 등 제작사 측에 따르면 관람권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12~1월 조씨 출연분 공연 티켓이 대부분 팔려나갔다. 그의 공연을 보려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판매하는 2월 이후분의 좌석을 노려야한다. 다행스러운 건 공식적인 공연 기간이 5월 초까지 늘어났다는 점이다.

2004년 국내 초연부터 '지킬 앤 하이드'에 참여했던 그가 2006년 8월 국립극장 공연 이후 4년 만에 돌아왔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그의 열정적인 연기와 노래에 박수를 보냈고 공연이 끝나자 기립박수의 전통을 이어갔다.

같은 작품으로 세 번째 무대에 오른 그의 연기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차분하고 따뜻한 지킬의 목소리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저음의 하이드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이나 양쪽 얼굴을 엘리트 지킬과 미치광이 하이드로 반반씩 분장해 번갈아 노래하는 '대결(Confrontation)'이 울려퍼질 땐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지킬 앤 하이드'는 클래식과 팝 형식으로 끊임없이 노래가 이어지는 데다 드라마도 강하다. 살인마로 변해가는 지킬의 고뇌하는 모습,하이드가 지하 연구실에 불을 지르거나 임상실험을 반대하던 이들을 차례로 살해하는 장면 등 강렬한 장면이 많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선과 악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양면성을 결국 두 개의 자아로 분열시키는 남자의 얘기.유능한 의사이자 과학자인 지킬은 행동제어를 통한 정신분리 시험에 나서지만 잔혹한 괴물로 변한다. 약혼녀 엠마와 창부인 루시와도 비극적인 삼각관계를 이룬다.

카리스마가 강한 류정환씨와 일본 극단 '시키(四季)'의 김준현씨,'오페라의 유령'에서 팬텀과 라울 역을 모두 소화하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인정받은 홍광호씨가 지킬 역을 맡았다. 조승우만 고집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캐스팅이다. 5월8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5만~13만원.1588-5212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