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달러와 유로화에 이어 제3의 기축 통화가 돼가고 있다. "(데니스 가트먼 미국 투자자문 전문가)

금 투자열풍이 뜨겁다. 개인과 헤지펀드는 물론 주요국 중앙은행까지 사재기에 가세했다. 부자들은 톤(t) 단위로 금을 사들인다. 20년 이상 닫혔던 폐금광이 다시 문을 열고,'금본위제' 논의까지 흘러나온다. 추락하는 달러 대신 절대통화인 금을 기축통화로 삼자는 주장이다. 세계 상품투자시장에서 올 들어 벌어진 일들이다. "투자자들은 황금의 슈퍼사이클에 열광하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진단도 나온다.

문제는 황금랠리 이후다. "매도 시점을 찾는 큰 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마켓워치)는 경고음도 커진다.


◆'金의 황금기'

국제 금값은 2000년 온스당 250달러 선에서 현재 1400달러 선으로 5배 이상 올랐다. 이 가격대를 연말까지 유지한다면,금값은 10년 연속 상승랠리를 기록하게 된다.

파죽지세의 시세폭등 배경은 간단하다. 안전자산 선호추세에 따른 대체투자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런 학습효과는 더욱 뚜렷해졌다. 주식,통화 등 '종이 자산(paper assets)'은'언제든 폭락할 수 있다'는 불신감이 금 등의 '하드 애셋(hard assets)' 쏠림 현상을 이끌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이다.

안전투자처를 찾던 유동자금을 쓸어담은 곳은 대규모 펀드들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상장지수펀드(ETF)가 금 시장의 확대재생산에 불을 지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TF는 누구나 쉽게 금을 사들일 수 있는 '금 투자의 민주화'를 이끌어 낸 주역"이라고도 평가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ETF주식을 사들이기만 하면 금을 보유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금위원회는 "ETF의 등장으로 금 시장은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중국이다. 세계 최대 금 생산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블랙홀'처럼 금을 사들였다. 올해 수입한 양만 209t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수입한 45t의 5배에 달한다. 선샹룽 선 상하이 금거래소 회장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기대감 등에 따라 헤지 수단인 금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진풍경과 어두운 그림자

금 열풍은 광산투자로도 이어졌다. 캐나다 금광업체 '골드코프'는 최근 35억8000만달러를 주고 호주의 금 채굴업체 '안데안 리소시스'를 사들였다. 또 미국 에너지업체 '월터에너지'도 캐나다 금채굴 회사인 '웨스턴콜'을 33억달러에 인수했다. 캐나다 엘도라도 골드는 앞서 지난해 중국 금광 2곳을 매입하기도 했다. 메탈스이코노믹스그룹에 따르면 지난 9월과 10월 두 달 동안 금광 인수 · 합병(M&A)은 직전 두 달에 비해 43% 늘었다. 금액 규모로는 187억달러에서 979억달러로 5배 이상 급증했다. FT는 "금융위기 이후 자금난에 처한 금광 회사들은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금광개발프로젝트에 쉽사리 투자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 귀금속 시장조사 업체인 CPM그룹에 따르면 2000~2009년 금 생산량은 18% 감소했다. 장신구용 금 수요가 10년 새 80%에서 40%로 반 토막 나는 동안투자 수요는 폭증한 것도 소비트렌드의 두드러진 변화다. 사치성 장신구에 머물던 금이 첨단 금융공학 덕에 누구나 열망하는 투자대상으로 변신한 것이다.

금값 상승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가 재활용 회사들이다. 폐컴퓨터,폐휴대폰 등에서 금을 추출하는 '도시광산'이 떠오른 것이다. 금원석 1t에서 5g 정도의 금을 뽑아낼 수 있는 반면,휴대폰 1t에서는 이보다 30배나 많은 150g의 금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금 열풍의 이면에는 그늘도 있다. 어린이 노동자들의 납중독이 대표적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나이지리아 어린이 수백명은 지난 수년간 금채굴 과정에서 납중독에 걸려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납과 금이 섞인 바위를 깨트리다가 중독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33명 전원 생존귀환이라는 드라마로 끝나긴 했지만, 수직갱도 700m 아래에서 벌어진 칠레 산티아고 광산붕괴 사고는 어린이들의 납중독 사례와 함께 갈수록 '위험산업'으로 변하고 있는 금광업의 현실을 보여준다.

◆슈퍼펀드 경계령

금은 사치성 귀금속인 동시에 반도체 제조 등에 쓰이는 필수 산업용 소재다. '묻어두면 언젠가는 쓸 수 있는' 썩지 않는 실물 자산이다. 금은 점성이 좋아 장신구 제작은 물론 산업용 소재로도 널리 쓰인다. 1g만으로도 머리카락 5분의 1 굵기의 실을 250m까지 뽑아낼 수 있을 정도다.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등 첨단산업에서도 최상의 소재다. 본질 가치가 높다는 얘기다. 게다가 전 세계 어디서든 현금화가 가능한 게 금이다. 때문에 금 가격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1년 안에 1650달러까지 간다"(골드만삭스)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상품투자 전문가인 짐 로저스는 "10년 안에 2000달러까지 오른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시장의 법칙이다. 중국이 매집한 금을 풀 때나 통화가치가 반등할 때가 가장 큰 위기다. 더구나 지난 수년 동안 금 재고가 특정 투자자에게 집중됐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이미 금시장에는 미국 SPDR 등 거대 금펀드의 가격 지배력이 정점에 달해 있다. WSJ에 따르면 SPDR은 지난 9월 기준으로 1304.8t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 규모는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중앙은행에 이어 세계 5위에 해당한다. 펀드의 움직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금위원회 연구원을 지낸 일본의 도시마 이쓰오 금전문가는 "상당수 금 딜러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기 금랠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다가 컴퓨터에 앉으면 매도시점을 찾는 속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상품시장의 양면성을 갈파한 것이다. '애프터쇼크,다음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자신과 수익을 지키는 법'의 저자인 로버트 위드머도 "금은 최대,그러면서 최악의 거품"이라고 지적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