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시나 음모론을 끌어들이는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속편한 방법이다.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쏟아지는 서적들도 대개 이런 수법을 쓴다. 이들은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분위기를 잡지만 화폐공급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엄격한 규칙들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다. 미국판 좌파 친서민정책이 바로 서브프라임 대출이요 포퓰리즘이며 거품의 원인이었다고도 절대 고백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에서 수십만권이나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애들이나 속일 뿐이다. '정의란…'은 공리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신이 나서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치기준에 대해서는 벙어리다.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금세 들통나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대부분 반미주의지만 인터넷이나 아이폰에 이르기까지 전기 전자 전화 냉장고 세탁기 비행기 반도체 휴대폰…,(너무 많아 셀 수 없다) 이들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물건의 거의 전부가 '더러운 미제'라는 사실은 부인한다. 일본이 워크맨 하나를 만들었을 뿐이고 한국은 아직 무언가를 내놓은 적이 없으며 좌파들이 미국을 혼내주는 강대국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는 중국은 아직도 짝퉁만 만들고 있다. 더구나 이들 좋은 물건은 모조리 기업가라는 악당들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언제나 기업가들을 질투할 뿐인 강단학자들은 이런 오류를 확대재생산한다. 최근의 어떤 책은 인도와 스웨덴 운전기사가 같은 일을 하고도 소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고발로 포문을 연다. '인도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인 것을 저자는 교묘하게도 인도의 가난한 자가 아닌,부자들의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을 바꿔친다. 이렇게 되면 혐오 캠페인에 불과하다. 베트남에 삼성전자가 없는 원인을 베트남 부자들에게 돌리는 식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도 운전사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은 정말 기발하다. "노동에 대한 보상은 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산과 축적된 집단적 노력까지 적절히 고려해서 행해져야 한다. " 오 마이 갓!?*&$ (이런 표현을 이해해달라) 도대체 이것을 말이라고 하는지 궁금하다. 이 놀라운 보상시스템을 실행할 구체적 방법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평가는 하느님이나 가능하다. 요즘은 하느님이 한국인의 얼굴은 잘 구분하지 못한다니 큰일이다.

학자들은 대부분 돈도 많고 잘난 체하는 기업가를 혼내주고 싶어한다. 언론인도 그런 범주에 든다. 그러나 정치와 공적 영역이야말로 언제 어디서건 공짜를 좋아하고 더욱 우쭐대는 자들로 넘쳐나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이는 우리가 며칠 전 국회에서 목도한 그대로다. 누가 우리의 혈세를 제멋대로 나누어 먹는지도 우리가 본 그대로다. 항상 고상한 도덕적 가치를 입에 달고사는 정치인들의 주특기다. 이들은 국가부채로 지탱하는 복지가 다음 세대로부터 훔친 것에 불과하다는 진실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 빵을 공정하게 나누는 간단한 방법은 한 사람이 자르고 다른 사람이 선택하면 될 것인데 왜 좋은 방법을 포기하냐고 선동하지만 빵을 만든 사람에게 우선권이 없다면 빵은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침묵한다.

성장할수록 빈곤해진다는 이들은 실은 진보를 부정하는 세력들이다. 루소 마르크스 베블런이 모두 눈 앞에서 행진해가는 진보를 알아보지 못했다. 음모론은 이처럼 진정한 이해를 방해한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이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가들의 열정에 힘입었다는 것에도 침묵한다. 이는 최근 정부에서 펴낸 '한국경제성장 60년사'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장사꾼(기업가)이 없는 시장을 이들은 잘도 만들어 낸다. 천국을 상정한 다음 현실을 지옥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천국의 오류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오류의 확산은 역설적이게도 지옥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고 그 길을 넓힌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