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과장은 얼마 전 팀장의 눈 밖에 났다. 회의 때 팀장이 낸 기획 아이디어에 대해 "요즘 세대엔 안 먹힌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이 화근이었다. 토라진 팀장은 김 과장의 아이디어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한동안 서먹한 관계가 지속됐다. 마침 미국 출장이 잡혔다. 김 과장은 고민 끝에 50달러를 투자해 곰인형을 샀다. 팀장의 여섯살 배기 막내딸을 위해서였다. 효과는 톡톡했다. 곰 인형을 받아든 팀장의 표정은 환해졌다. 화도 눈 녹듯이 녹아 내렸다.

한 해를 보내면서 김 과장,이 대리들은 인간관계의 '연말결산'을 위해 분주하다. 고마웠던 이들에겐 연하장이나 감사의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이것은 쉽다. 문제는 꼬인 관계를 푸는 작업이다. 연말을 활용해 관계정립에 나서 보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화해에도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송년회 자리를 적극 활용하라

[金과장 & 李대리] "그땐 제가 죄송했어요"…우리 사이도 '연말정산'이 필요해!
송년회 자리는 한 해 동안 쌓인 앙금을 풀기에 더 없이 좋은 자리다. 공기업에 다니는 차모씨(32)는 지난주 송년회에서 상사를 들이받았다. "잡무를 도맡아 했는데도 인사고과를 좋지 않게 준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다행히 상사는 화를 내기보다 차분히 그의 말을 들어줬다. 사유도 설명해 줬다. 차씨는 "내 업무에 매몰돼 전체 그림을 보지 못했다"며 "상사가 조목조목 장단점을 설명해 주니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상사를 공연히 원망했던 것 같다"며 "내년엔 더 잘할 수 있단 자신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상사들도 한 해 동안 묵은 마음의 찌꺼기를 털고 가볍게 새해를 시작하고 싶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있는 정보기술(IT)업체의 신모 부장(47)은 "올해 경기가 그다지 좋지 않아 회사를 떠난 팀원이 있었다"며 "밥 한번 먹자고 전화해 근황도 듣고 좋은 자리 나면 연락 주겠다고 말하니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덜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멤버십을 다지려고 겨울에 등산가는 부서도 있더라"며 "남자들끼리 있는 팀이라면 등산이나 운동 후에 사우나를 같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추천했다.


◆'아군'과의 교전 후 눈물의 화해

직장생활의 금기사항 중 하나가 바로 내편인 '아군'과의 전투다. 싸움은 주로 주적과 벌이지만,아군과의 '우발적 교전'도 얼마든지 벌어진다. 친한 만큼 쉽게 봉합될 확률이 높다곤 해도,자칫 적군 10명보다 센 '최강의 적'을 만들 수도 있는 게 아군과의 전투다. 내 약점을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모 대기업 구매팀에서 일하는 박모 과장(35)은 올초 노총각인 입사동기와 생각지도 않았던 일전을 벌인 뒤 석 달이나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속앓이를 했다. 팀 선배랑 구매예산절감 포인트를 놓고 티격태격하느라 열이 뻗쳐있는 데,지나가면서 '박 과장이 납품사에 우유부단한 것 같다'고 툭 던지고 가는 게 아닌가. 그 뒤통수에 대고 '야 이 xx야 너는 빠져! 장가도 못 간게…'라고 육두문자를 섞어 퍼부어 댄 게 화근이었다. 동기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선배편을 든 게 괘씸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쏘아붙인 것이었지만,하필 동기 녀석의 아킬레스건을 쑤시고 말았던 것.서로의 문제점을 직장 동료들에게 한두 개씩 흘리고 다닐 만큼 갈 데까지 가는 듯했던 관계가 풀어진 것은 둘을 모두 다 잘 알고 지내던 한 납품회사 임원 덕분이었다.

박 과장은 "1차로 술 한잔 한 뒤,2차로 옮긴 자리에 동기가 그 납품업체의 다른 임원과 함께 2차를 와 있었다"며 "술이 취하기도 했지만 파국 직전에 겨우 화해를 하고 나니 눈물이 다 나더라"고 말했다.


◆'메신저'통한 화해,결국 불발로 끝나

송모 차장(45)은 얼마 전까지 한 중견 제조사에서 일했다. 그의 영업 실적은 뛰어났다. 하지만 실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회사에는 손해였다. 물건은 잘 팔지만 수금을 할 때 반품이 나오는 일이 잦았다. 100만원 이상 되는 제품도 할인을 해 주거나 사은품을 끼워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건값도 현금으로 받는 게 아니었다. 캐피털사를 통해 수금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수료도 만만치 않았다. 송 차장의 실적은 최고였지만 팀에는 적자였다. 때문에 송 차장과 그의 상사 김모 실장(47 · 여)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이사와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이후 그들은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 실장이 정모 대리(31 · 남)에게 "정 대리,이번 실적 목표는 어떻게 되나"라고 물으면 정 대리가 송 차장에게 물어본 후 대답하고,송 차장이 정 대리에게 "정 대리,나 오늘 먼저 들어간다"라고 얘기하면 김 실장이 한 귀 넘어 듣는 식이었다. 화가 난 정 대리는 술자리를 만들어 둘의 화해를 유도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이사는 더 친한 김 실장 편을 들었고,결국 송 차장은 사표를 내고 말았다.


◆화해하려다가 오히려 화 키우기도

화해를 위해 마련한 자리가 오히려 파국적인 결말을 초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난해 한 중견 기업 영업파트에 입사한 이모씨(26 · 여).그가 입사한 기수는 직전 기수에 비해 학력도 좋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자격증 등 '스펙'도 빼어났다. 시샘을 느낀 바로 윗기수 김모씨(28 · 여)는 대놓고 아래 기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에게 그 기수를 싸잡아서 이간질을 했다. 기선을 잡겠다며 단체로 불러놓고 훈계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선배가 이씨 기수를 '소집'했다. 연말을 맞아 그동안 쌓인 묵은 감정을 씻어내고 새 출발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막상 저녁 자리에서 김씨가 한 얘기는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선배들이 너희들의 잘못을 모두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였다. 이씨는 부아가 치밀었다. 결국 그 자리에 참석한 동기 한 명과 함께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유모 과장(36)은 최근 망년회에서 같은 팀 동기 과장과 해묵은 앙금을 풀려다가 낭패를 봤다. 올해 초 사업 프로젝트에 대한 이견으로 한해 내내 서먹한 관계를 가졌던 동기였다. 그대로 해를 넘길 수는 없는 노릇.송년회를 계기로 삼았다.

한 잔 두 잔 술이 돌며 자리가 무르익자 유 과장은 동기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옮겨 술잔을 권했다. 유 과장은 '이때다' 싶어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을 토로했다. 동기도 "그동안 미안했다"며 화답했다. 하지만 방심이 문제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 잠시 우쭐해졌던 유 과장이 동기의 얼굴을 살짝 만지며 "앞으로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별이 반짝했다. 자존심을 굽히고 미안하다는 말을 꺼낸 동기가 유 과장의 사소한 행동이 맘에 들지 않아 주먹을 날린 것.망년회 자리는 격투장으로 변했다. 유과장은 내년 인사팀에 인사이동을 요청할 계획이다.

김동윤/이관우/이정호/이상은/강유현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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