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이 국회와 감사원의 계속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근로복지기금을 편법적인 급여 인상 또는 과도한 복리후생비 지급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기관에서는 근로복지기금으로 대학생 자녀 학자금,주택임차 보증금 등을 무상지원하고 있으며,심지어 초 · 중학생 학원비를 지원하는 기관도 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힘겨워 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움을 넘어 입이 벌어질 정도다.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는 1983년부터 경기 활성화의 방편으로 처음 도입된 이래 1991년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우리보다 앞서 1943년에 근로복지기금법을 제정 시행하고 있는 대만과 우리나라에서만 운영되고 있는 특이한 제도다.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는 노사가 함께 노력해서 일궈낸 기업 이익 중 일정 부분을 기금으로 적립해 근로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효과적으로 운영된다면 근로의욕과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켜 생산성을 제고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법에서는 비록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기업주가 사업여건을 고려해 기업이익 중 일부를 기금 재원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민간기업은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익을 많이 창출했더라도 사업주가 근로자들의 복리후생을 위한 비용을 선뜻 내놓으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므로 법률로 기준을 정해 기금 출연의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민간기업과 똑같은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거나,정부 정책에 따른 독점사업권 부여로 인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이익을 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발표를 보니,공공기관의 1인당 기금 출연금 및 누적금액이 민간기업보다 각각 3.1배,3.6배나 높다고 한다. 민간기업에 비해 결코 생산성이 높지 않은 공공기관에서 이렇게 많은 재원을 확보해 놓고 그동안 방만한 복리후생사업을 해온 것은 전형적인 도덕적 해이의 한 형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의 과도한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내년도 예산편성지침을 개정해 정부의 재정지원,출자회사 매각,유휴자산 매각 등 자체 노력에 의하지 않은 순이익을 근거로 기금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를 잘 활용하면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기금 출연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 같은 기관 외부의 규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 스스로 제도 취지에 맞게 기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생산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12월은 공공기관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시기다. 공공기관 스스로의 엄정한 원칙 준수와 절제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창우 < 서울대 교수·회계학 /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