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美의 9·11세대, 한국의 11·23세대
21세기의 첫 10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많은 격변을 겪었다.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가 터지기도 했다. 가장 큰 충격은 2001년 9월11일에 일어난 9 · 11 테러였다. 미국인들은 영국과의 '1812년 전쟁' 이후 처음으로 본토가 공격받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테러는 9 · 11 세대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기성세대를 여러 차례 놀라게 했다.

기성세대는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조직세대(organization kids)라고 부른 젊은이들을 보며 개탄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청년세대와 달리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스태그플레이션이 막을 내린 풍요와 평화의 시대였던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신세대는 대학 입학 뒤엔 취업 고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미래에만 관심있을 뿐 공동체 의식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단견이었다. 9 · 11 테러 직후 미국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자원입대했다. 여당이었던 보수 성향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이런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다른 세대에 비해 진보성향이게 마련인 청년들까지 자기들 편이 됐으니 장기 집권은 기정사실이라고 기뻐했다. 젊은이들이 행동으로 보여준 애국심과 "내 가족과 나라는 내가 지키겠다"는 높은 안보의식을 보수화의 징표로 여긴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여당 정치인들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입만 열면 국가안보 위기라고 하면서 이에 준하는 행동은 소홀히 했다. 자기 잇속을 차리는 데 바빠 부정부패를 일삼고 스캔들을 터뜨렸다. 9 · 11 테러 이전 추구하던 정치 아젠다를 그대로 밀어붙이며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정쟁을 거듭했다. 그 결과 당은 언행불일치의 대가를 치렀다. 청년들은 공화당에 등을 돌렸다. 2006년 중간선거와 2008년 대선에서 대거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공화당은 행정부와 의회를 모두 잃고 말았다.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11 · 23 세대는 여러모로 미국의 9 · 11 세대를 연상시킨다.

기성세대들은 우리 경제가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북한 정권의 도발이 급격히 줄었던 198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청년들을 보며 실망했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젊은이들은 나약하게만 보였다. 사교육 홍수에 휩쓸려 초 · 중등 교육을 받은 뒤 대학에 들어와서는 학점 경쟁과 자격증 따기 등 '나'만을 위한다고 생각했다. 동료와 조직,그리고 나라에 대한 애정이 없는 세대가 등장했다고 우울해했다.

이 역시 착각이었다. 지난 11월23일,북한이 자행한 무자비한 공격 장면이 TV 화면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지만 젊은이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군 입대를 자원했다. 해병대 지원율은 작년보다 높아졌다. 신세대가 즐겨 찾는 온라인 사이트에는 놀라운 모습이 벌어졌다. 해병 장병들의 사진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이 수백개씩 달렸다. 남학생들은 북한군의 도발을 좌시해선 안된다고 분노했고 여학생들은 전쟁이 나면 부상병 치료라도 하고 싶다고 동조했다.

이런 모습에 고무된 정부 여당은 미국 공화당의 전철을 밟는 듯하다. 천안함 사건 뒤 의원연금을 신설했던 여당 의원들은 야당과 담합해 세비를 올렸다. 폭력을 불사하는 극한 정쟁을 계속하고 있다. 내년 예산을 보면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는 연평도 포격 이전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적의 도발을 온몸으로 막아낸 국군 장병들의 가슴을 울리는,담대히 군문에 들어선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국정 운영을 기대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11 · 23 세대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다.

윤계섭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