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바뀐다. " 뉴 밀레니엄 시대의 두 번째 10년 주기에 접어드는 세계인에게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분석 기관인 EIU를 비롯한 주요 예측기관들이 내놓은 공통 전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경제활동을 규정해 온 '글로벌 스탠더드'와 전혀 다른 '뉴 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 시대가 본격 전개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향후 10년 세계 경제를 특징지을 뉴 노멀(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은 '워싱턴 컨센서스(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바탕을 두었던 글로벌 스탠더드와 '글로벌 거버넌스'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세계 경제를 강타한 금융위기가 미국을 진앙지로 하면서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행강제력은 땅에 떨어졌다.

◆막 내리는'팍스 아메리카'

영국 경제전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0년대를 여는 첫날을 맞아 두 가지 화두(話頭)를 던졌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언제 중국에 추월당할 것인가와 영어가 언제까지 세계 공용어의 위상을 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팍스 아메리카 시대'의 이들 두 가지 상징어는 2010년대에 종언을 고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잇따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매년 중국은 7.75%,미국은 2.5% 성장하고 위안화가 3%씩 평가절상될 것이란 전제 아래 2019년에 중국이 세계 1위 경제대국으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최전성기를 맞고 있는 영어의 위력도 핵심 사용계층인 백인이 3억명에서 정체 상태고,컴퓨터의 발달로 통역 기술이 크게 향상돼 조만간 시들 것으로 예상했다.

뉴 노멀 시대에는 세계 경제 최고 단위부터 바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규범과 국제기구를 주도해 왔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 7개국(G7)의 역할과 기능이 중국을 새로운 중심축으로 하는 주요 20개국(G20)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2010년대 태동할 국제규범은 보다 많은 국가의 이익이 반영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글로벌화 추세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각국의 이익이 보다 강조되는 과정에서 글로벌 추세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신(新)보호주의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기구에 대한 회의론과 함께 신역할론도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G20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등 신흥국들의 쿼터를 대폭 늘렸다. 세계 경제의 중심축 이동과 함께 회의론이 불었던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른 국제기구들도 IMF와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기구 간 연계 움직임도 빨라질 것이 확실하다. 이미 WTO와 IMF 간의 연계 움직임이 시작됐다. 갈수록 무역과 금융 등 경제 각 분야가 '이분법 경제'에서 '불가분 경제'로 바뀌는 상황에서 국제기구가 본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떠오르는 행동경제학

뉴 노멀 시대에는 경제학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면서 심리학 생물학 등을 접목시킨 행동경제학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이 무너지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와 같은 시장 실패 부문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 시장과 국가가 경제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혼합경제'가 한동안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규제 완화보다 규제 강화,사적 이윤보다 공공선(善)이 강조되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산업분야다.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를 맞아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차별화 또는 고부가 제품을 통한 경쟁우위 확보가 더욱 요구될 전망이다. 반면 후발 기업들은 창의 · 혁신 · 개혁 · 융합 · 통합 · 글로벌 등 다각화 전략을 통해 경쟁력 격차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는 새로운 공급여건이 정착되고 있다.

수요 측면에서는 트렌드의 신속한 변화에 따라 고부가 제품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는 반면 이들 제품 소비에 드는 비용을 무료 콘텐츠 제공 등을 통해 줄여나가는 이율배반적인 소비행태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갈수록 이런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한 인간 중심의 커넥션은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종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나눔,기부 등 이른바 '착한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기업과 계층에 대해 가치와 평가를 부여하는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벌써부터 천재성 제품으로 구성되는 '알파라이징 인더스트리'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BOP(base of the economic pyramid) 비즈니스'가 2010년대를 상징하는 유망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

◆기업 해법은 '선제(先制) 경영'

기업환경이 변하는 만큼 경영 트렌드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2010년대를 맞아 기업들은 '시장지배력을 겨냥한 선제적 공격경영' '떠오르는 뉴보호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토착화 전략' '신수종 사업개발' '외부 자원을 활용해 신성장 동력을 찾는 전략적 M&A''고객 감동을 주는 주력 제품의 서비스화' '모바일 융합을 통한 신사업 모델 개발' '저탄소 제품 개발과 친환경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경쟁우위를 확보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되는 것은 이미 많은 분야에 걸쳐 변화를 몰고 오기 시작한 '뉴 노멀'이 새로운 스탠더드로 정착되지 못하는 경우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뉴 노멀에 대한 실망감과 위기 이전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향수가 겹치면서 '규범의 혼돈'시대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10년을 여는 첫해인 2011년을 맞아 위기가 더 큰 위기를 낳는다는 '나선형 복합위기'가 새해 벽두부터 거론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1987년 블랙 먼데이,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위기가 10년마다 반복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뉴 노멀 시대를 맞는 모든 경제주체들이 '또 다른 10년'을 기대와 희망만으로 맞이하기에는 편치 않아 보인다.

2011년 1월1일,젤리(jelly)형 뉴 노멀을 확고한 준거의 틀인 새로운 스탠더드로 굳히려는 노력이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또 다른 10년이 지나 새로운 10년을 맞이할 2020년 말에는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