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도구가 아니라 국격(國格)이자 국력(國力) 그 자체입니다. 아직도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보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과학기술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새해부터 임기를 시작한 김도연 한국공학한림원 신임회장(울산대 총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역삼동 공학한림원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서울대 공대 학장과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거쳐 울산대 총장을 맡고 있는 그가 공학한림원을 이끌게 돼 과학기술계 안팎의 기대가 크다. 공학한림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학자들과 기업인들이 모여 있는 싱크탱크다. 올해 출범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산파 역할을 담당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김 회장은 "과학은 돈을 써서 지식을 만드는 것이고 공학은 지식을 이용해 돈을 버는 것"이라며 "진득한 (과학기술)연구가 가능한 풍토가 정착돼야만 '스트롱 코리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월요인터뷰] "과학기술이 國格 높이는 시대…'산학일체' 새 모델 만들 것"
▼공학한림원을 어떻게 이끌 생각인지요.

"회원들이 모두 우리나라 공학과 산업계를 대표하는 분들인 만큼 이들을 사회와 긴밀히 연결하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특히 산학협력을 넘어 '산학일체화'라는 모델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여태까지 우리 과학기술은 응용분야에서 미국이나 일본을 추격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원래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식이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없던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새로 개척할 부분이 많아졌습니다. 이를 위해선 여태껏 하던 식의 산학협력으로는 안됩니다. 산학이 하나가 돼서 모든 힘을 다 짜내도 될까 말까 합니다. 전통적 가정을 빗대보면 대학이 인재를 가르치는 어머니라면 기업은 과학기술을 갖고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아버지입니다. 예전에는 역할분담이 뚜렷했지만 이제는 둘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가정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려면 산학은 지금보다 훨씬 더 긴밀히 연결돼야 합니다. "

▼교육과 과학기술이 한몸이 돼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 초대 교과부 장관으로서 성과는 있었습니까.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의미가 좀 다릅니다. 교육과 과학기술을 합친다는 것은 '초 · 중등교육 이하 업무는 일선교육청에 모두 넘기고, 중앙정부는 대학과 과학기술에 집중한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주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조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준비가 아직 안 됐고,국민정서도 그렇습니다. 급식 사고 한 건이라도 발생하면 장관부터 사과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과학기술은 교육에 묻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과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획일성도 문제입니다. 저는 전라도 초등학생과 경상도 초등학생이 배우는 역사가 지역색을 가미해 약간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같지 않으면 부당한 차별,특혜라고 몰아가죠."

▼국과위 운영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지금 그림을 그려가고 있으니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하겠지요. 제일 중요한 게 사람 구성의 문제일 겁니다. 또 출연연구원 문제가 큽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출연연구원 구조개편을 하는 것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효율적인 기구가 되도록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겁니다. "

▼출연연구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세계 어딜 가봐도 우리나라와 같은 출연연구원 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가 드물지요. 지금은 기업과 대학 사이에 정체성이 불분명합니다. 이는 교육을 접목해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국책연구소에서 학생들이 배출되고 박사학위도 받습니다. 궁극적으로 출연연구원도 학생을 길러내야 합니다. 배움이 없는 연구원은 안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계속 흘러들어와 황당한 생각도 하고 실수도 하고 해야 하는데 출연연구원은 전반적으로 너무 인력이 노쇠했습니다. 또 항상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개혁의 대상이 되니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출연연구원이 제대로 자리매김한다면 어떤 곳보다도 창의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

▼일본에서 한국기업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과학기술 수준을 일본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일본에 비해 우리 과학기술의 연륜은 너무 짧습니다. 일본은 이미 20세기 중반에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자체 기술로 만들었던 나라입니다. 학문도 3대를 해야 좋은 학자가 나온다고 합니다. 연륜 때문에 생기는 차이는 극복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산업기술은 아쉬우면 외국에서 사오기도 하고 모방도 할 수 있는데 기초과학은 그럴 수 없습니다. 착각을 자주 하는데 우리는 몇 개 산업기술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는 것이지,과학기술에서 경쟁력이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실 산업기술에서 기적처럼 빨리 쫓아온 것이죠.(기초분야에서) 일본과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기초과학을 포함해 국내 과학기술을 업그레이드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월요인터뷰] "과학기술이 國格 높이는 시대…'산학일체' 새 모델 만들 것"
"과학은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지원해야 합니다. 과학과 공학은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갑니다. 미국이나 일본 국민들은 아직도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하루 만에 끝낸 게 과학기술(원자폭탄)입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하루에 미국 젊은이들이 200명씩 죽었어요. 이들을 다 살려낸 게 과학기술입니다. 일본도 끝까지 해보려다 완전히 두 손 두 발 다 들었죠.그래서 두 나라에선 과학기술에 투자한다고 하면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엄청난 경험과 끔찍한 기억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 · 개발(R&D)비 비중이 높은 걸로 알고있습니다. 아직도 지원이 부족하다는 말씀인지요.

"물론 무조건 퍼다 주기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에 대해 무섭고 냉정하게 평가는 받아야 하지만,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엎어지고 자빠지고 머리가 깨지고' 하면서 가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초 · 중등교육도 문제입니다. 과학과 연계된 기술교육과 엔지니어링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전무합니다. 또 융합인재를 기르는 것이 시급합니다. 학문이 계속 분화하면서 여기까지 발전했는데 이제는 한계에 이른 측면이 있습니다. 돌파구(breakthrough)가 필요한 시점인데 우리나라 대학들은 벽이 너무 높아 대처능력이 떨어집니다. "

▼국내 대학의 경쟁력이 그렇게 떨어집니까.

"대학은 상당히 뒤떨어지고 폐쇄적인 조직입니다. 어느 조직이건 문을 걸어 잠근 채 발전하진 못합니다. 능력 없고 잘 가르치지 못해 쫓겨났다는 교수 얘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없을 겁니다. 잘하는 사람 밀어주고 못하는 사람 뽑아내야 발전하는데 대학은 그렇게 안하고 있고,그러다 보니 하향평준화되는 겁니다. 등록금도 다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일류대 이류대 구분이 무의미합니다. 우리나라 공대에서 박사학위 받으려면 6~7년 걸립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미국처럼 2~3년 안에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정말 잘하는 친구들은 먼저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겁니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는 등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처럼 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겁니다. 경쟁이 없으니 대학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정리=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김도연 회장은…官·學 두루 거친 '통섭형 학자'

김도연 회장(59)은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볼레즈-파스칼대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학 중 프랑스 르노자동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산학협력의 중요성을 처음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자동차산업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절삭공구 연구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왔다.

그는 아주대 공대 조교수를 거쳐 1982년 서울대 공대로 자리를 옮긴 뒤 공대 학장 등을 역임했다.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거쳐 2008년 9월부터 울산대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위에선 그를 대표적인 '통섭(通涉)형 학자'로 꼽고 있다. 김 회장은 1997~2005년 '재료미세조직 창의연구단' 단장을 맡던 시절이 학자로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창의연구단은 말 그대로 노벨과학상을 받을 만큼 독창적인 창의연구를 진행하라는 차원에서 정부가 전폭적으로 몇 개 사업을 매년 선정해 지원하는 것이다. 김 회장의 취미는 농사짓기다. 주말마다 부인과 함께 충북 감곡의 텃밭을 가꾼다. 그는 "농산물도 튼실하게 자랄 때는 벌레가 달려들지 않는다"며 "자연의 법칙처럼 사람도 항상 곁에서 가꿔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