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으레 미래 전망 기사들이 대중매체를 장식한다. 대개 그럴싸하게 들리는 얘기들이지만 족집게 같은 예측은 없다. 지난해 연초에 어느 누가 아이티 지진,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멕시코 만의 기름 유출 등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들을 짚어냈던가? 한반도만 해도 천안함 피침과 연평도 피격도 북한의 행동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개연성이 있었지만 적중한 예상은 없었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불확실성의 먹구름으로 장막 뒤에 가려진 실상을 엿보고 싶은 관음증과 조바심에 자극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을 보자.2011년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3.9%,GDP 규모 1조3940억달러,인플레이션 3.3%,1인당 GDP 2만2050달러(구매력평가 기준 3만1400달러)로 건실한 경제성장 실적을 점치고 있다. 다만 북한의 도발 행위가 안정위협 요인으로 남아 있다고 본다.

미국은 GDP 증가율 1.5%,인플레이션 1.5%,GDP 규모 14조9960억달러,1인당 GDP 4만8010달러(구매력평가 기준 같음)로 추세선 밑에 있는 성장과 높은 실업률이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은 GDP 증가율 8.4%,GDP 규모 6조4600억달러,인플레이션 3.5%,1인당 GDP 4800달러(구매력평가 기준 8390달러)로 고속성장 가도를 달릴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점술가의 수정구슬 속에서 25년 이후 2036년의 세계 경제를 내다보며 줄달음치는 중국이 뒤뚱거리는 미국을 앞지를 시기를 읽는다. 경제 규모의 추월 예상시점이 아마도 2027년쯤,이르면 2025년으로 보이지만,그 후 상당 기간 지나도 부(富)의 기준에서 여전히 미국의 우위가 지속될 것이고,문화와 풍습 측면에서 전 세계인이 모방하고픈 대상으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고 앞서기 어렵다고 본다.

지난해 한국은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 교역규모가 곧 1조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다. 경제 위기 와중에 각국이 보호무역주의 색채를 짙게 하는 상황에서 GDP 대비 8할을 훨씬 넘는 수준까지 치솟은 교역 비중은 적색 경계 신호다. 더구나 미국 의존도가 낮아지고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발목이 잡히는 함정이 아닐 수 없다.

서양에 지는 해가 동양에 뜬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200여년 전 중국이 지구의 중심국이라는 중화(中華)사상의 뿌리에 다시 움이 돋아 인근 국가들 위에 군림하는 종주국 행세가 되살아나는 최근의 조짐들이 위협적이다. 1세기 전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면서 여세를 몰아 한반도를 병탄하고 중국으로 진군했다. 21세기 초 중국이 동아시아 땅 따먹기를 재연할 수 있다.

한국은 바람개비였다. 대륙의 중원이 혼미한 시기에는 독립국가 모습을 유지했으나 예전에는 사대(事大)를 살 길로 알고 견뎌왔다. 선각자 서재필을 중심으로 모인 독립협회가 1897년에 세운 독립문은 원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섰다. 중국 사신을 고맙게 맞이한다는 뜻을 뒤엎겠다는 의지였으나 그 현판을 이완용이 썼다는 사실이 당시의 바람 방향을 알려준다.

21세기 한반도에 불어닥칠 바람 방향은 예정돼 있다. 대자연의 기상변화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지만 국가 간의 기압 변화는 전적으로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결집해 국론을 통일하면 작은 나라도 강소국이 될 수 있다.

중국이 1세기 전 일본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하지만,한반도가 사회적 화합,건실한 경제성장,굳건한 안보 태세로 무장하면 웬만한 바람은 잠재우고 집단속할 수 있다.

김병주 < 서강대 경제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