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관료에겐 영혼이 없다고 말했다. 아마 책임 추궁에 대한 항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원래 그런 것이다. 국정 이념, 다시 말해 영혼의 문제는 정치의 몫이다. 막스 베버가 정의한 관료제도는 오로지 그 근대적 수단성에 주목하여 유지되어 왔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닌 모양이다. 지난 연말의 개각도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물 간 관료들이 모두 돌아왔다. 차라리 관료 독재요 전성시대라는 말이 적절하다.

장관 후보자 개개인의 자질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소위 '수단 좋은 사람'을 고른 결과다. 이 정부가 세련된 수단과 수족은 있으되 생각할 뇌가 없는 그런 철학 부재의 상황이라는 것을 다시 증명한 셈이다. MB 정부에는 도저히 감동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깔려 있다.

정권 말기에는 관료 출신을 중용하게 된다는 일반칙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쓸 사람이 관료밖에 없다면 이는 비극이다. 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이 없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의 독특한 업무 스타일이 관료 일색을 만들어 내는 근본 이유에 가까울 것이다. 실은 대통령 자신도 기업 관료 출신이다. 바로 이 때문에 대통령의 일하는 스타일에는 관료출신이 아니면 리듬을 맞추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선 대통령의 세세한 질문에 숫자를 들어 대답하지 못하면 장관 해 먹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업무 방식이 고도화된 민주 사회에는 맞지 않다는 점이다. 언제나 허겁지겁 밀려드는 일에 치여 고단함만 쌓게 되고 정작 진짜 국정 과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되는 그런 혼돈에 점차 빠져들게 마련이다. 이명박 정권이 좌충우돌 온갖 명목으로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는 것은 그 결과다.

정권 초기에는 주말에 등산 갔다가 잘린 고위 인사도 있었다. 불면증에 시달린 윤증현 장관에 대한 의사의 처방은 햇볕을 많이 쬐고 많이 걸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등산이 안되고 골프도 안되니 사정이 딱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같은 업무 방법이 지속되면서 간섭주의적인 거대 정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사회 문제에 정부가 일일이 망라적인 미세 정책을 갖고 있다면 이는 독재국가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시간이 갈수록 위원회가 많아지고 포퓰리즘에 경도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가 스스로 물가기관을 선언하는 것은 그 절정이다.

장관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념이나 철학에 상관 없이 서둘러 무언가의 구체적 대책을 만들어 내는데 이들 대책의 대부분은 시장개입이 골자다. 이런 일에는 영혼 없는 관료들이 적임이다. 이 정부 들어 3년 동안 공무원이 1만4000여명이나 늘어난 이유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좌파신자유주의라고 불렀는데 이 정부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측근의 증언에 따르면 대통령은 아침 업무시간이 시작하기도 전에 서류뭉치를 들고 숙소동 마당을 서성이다가 영부인이 정해준 출근 시간이 되면 총알같이 집무실로 뛰어 내려간다고 한다. 이 측근은 자랑삼아 들려준 말이지만, 맙소사! 대통령이 출근길을 달려야 한다면 이는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인가. 영국에서는 경찰도 뜀박질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디테일을 챙긴다고 실제로 디테일이 잘 돌아갈 만큼 세상은 간단하지 않다. 과장이 할 일을 장관이 챙기다보면 대통령은 치킨 가격에까지 언급해야 하는 소위 '만기친람'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방식은 누가 뭐래도 전근대 왕조시대의 낡은 관행이요 반시장적이다. 지시 없이는 안 움직이기 때문에 지도자는 결국 과중한 업무 끝에 길을 잃고 만다.

노무현 정부의 모 고위인사가 얼마 전 의기양양하게 이렇게 말했다는 점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겠다. "지금 정책의 90%는 노무현 정책을 베낀 것이다. " 그렇게 되는 이유를 청와대만 모르고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