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기업인들 모임에서 화제의 중심은 중국이었다. 요컨대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본인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것에 대한 놀라움과 이에 대한 경계심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 중국은 이미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상품이 제일 많은 수출대국이고,경제 규모면에서도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경제대국이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도 베이징은 지난해 런던을 따돌리고 세계 2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베이징 상위 3개 경매사의 경매성사금액은 약 3조5000억원으로 홍콩 시장까지 합치면 뉴욕을 추월한 5조2000억원 규모로 세계 1위다. 중국 최대 경매회사로 알려진 바오리의 지난해 낙찰총액만 약 1조5000억원이다. 이 회사는 출범 5년차밖에 되지 않는데도 지난해 12월에는 6일 동안 무려 9000억원에 이르는 미술품을 거래했다. 6일간 열린 33번의 경매 중 31번이 중국 미술품을 다룬 것이었다. 자국 미술품을 사들이는 중국 소장가들의 열기가 중국 미술시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외신을 통해 중국 미술품이 신기록을 수립하며 고가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진다. 지난해 11월 런던 북서부의 작은 경매회사에서 건륭제 시대의 도자기가 약 770억원(4300만파운드)에 거래됐는데,이는 동양 도자기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이다.

중국 경매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자극받은 237년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도 중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피카소,모네,르누아르 등 서구 인상파와 근대작가들을 앞세워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지만 중국 소장가들의 반응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사실 1996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철화백자운룡문항아리가 당시 환율로 계산했을 때 약 70억원(841만달러)에 낙찰됐을 때만 해도 중국 미술품은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국 미술품은 세계 경매시장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6월 북송시대 황팅지엔의 서예작품이 770억원에 거래되면서 아시아 경매 최고가를 경신했는가 하면,같은 해 12월에는 북송시대 칠현금이 약 230억원에 낙찰돼 세계 악기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리커란이 그린 장정(長征)이란 작품이 중국의 쟈더 경매에서 184억원에 낙찰돼 중국 근대 서화 분야에서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리커란은 2003년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우리나라 최고 원로 화가인 월전 장우성과 2인전을 열었던 작가다. 이처럼 중국의 자국 미술에 대한 자부심은 중국 미술을 세계 시장의 중심으로 부각시켰다.

반면 한국 미술품들은 아직 해외 경매에서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에 한국 미술품 중 중국 미술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발달된 것들을 기록해놨다. 그렇지만 우리 고미술과 한국화 시장은 너무나 저평가돼 있다.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회복은 우리가 한국 미술에 대해 얼마나 자긍심을 갖는가에 달려 있다.

이학준 < 서울옥션 대표 junlee@seoulauctio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