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벌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벌이 찾지 않으면 꽃도 피지 않습니다. "

한국 생활 31년 만에 귀화 허가를 받아 '한국인'이 된 로이 알록 쿠마르씨(55)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에서도 개방적인 이민정책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만 봐도 외국인들이 부와 미래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 네루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쿠마르씨는 1980년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입국한 뒤 한국인 아내를 맞아 두 딸을 뒀다. 현재 부산외국어대 인도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을 인도어로 번역하는 등 한국과 인도를 잇는 가교 역할도 맡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귀화 급증세

쿠마르씨는 이날 법무부에서 귀화 선서를 했다. 법무부는 이로써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이 1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대만 국적을 갖고 있던 손일승씨가 1957년 처음 귀화한 이후 54년,건국(1948년) 이후 63년 만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귀화자가 전체의 98%를 차지할 정도로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34명에 불과했던 국내 귀화자는 2001년부터 연평균 9816명에 달할 정도의 급증세를 타고 있다. 국적별로는 중국 79%(7만9163명),베트남 9%(9207명),필리핀 5%(5233명) 등의 순이다. 결혼 이민자가 늘고 중국 동포의 입국 문호를 확대한 때문으로 법무부는 분석했다.

반면 귀화자 가운데 외국 출신 인재는 많지 않은 실정이다. 사베리예프 블라디미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호사카 유지 세종대 일본어과 교수,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이 손에 꼽힐 정도다.

◆"이민청 신설하자"

급증세를 타는 귀화자 숫자와는 대조적으로 이민 · 귀화를 통한 해외 인재 유치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재계는 물론 정부 안에서조차 이민청 설립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지난해 말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고교졸업자 이상으로 200만명을 받아들이고,하루빨리 '이민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는 순이민율(인구 대비 순유입 이민자 비율)이 1%포인트 늘면 경제가 0.1%포인트 성장한다는 통계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일본이 이민과 인력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채 초고령사회(65세 인구가 20%를 넘는 상태)로 진입하면서 경제 · 사회 활력을 잃어버린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며 "이민청이나 인구청을 만들어 젊고 우수한 해외 인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 "다음 달 외국 인재 기준 마련"

정부는 외국인 우수 인재가 손쉽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국적법을 개정해 이달부터 시행하고 있다. 과학자,경제전문가 등 외국 우수 인재는 국내 거주기간 등에 관계없이 귀화를 허용하고 복수국적도 허용(특별 귀화)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르면 다음 달 특별 귀화 대상자의 '우수성 평가 기준'을 새로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저출산 ·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외국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이르면 3월부터 국무회의 등에서 이민청 설립 등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