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의 한 대형은행 지점 구매담당자 이모씨는 26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을 찾아 우수고객(VIP)에게 보낼 선물을 5000만원어치 구매했다. 7만~10만원대 와인과 홍삼,미역 등을 600여세트 샀다. 이씨는 "작년까지는 VIP용으로 온라인몰에서 4만~5만원대 선물을 대량 구매했으나 이번 설에는 가격대를 두 배로 높여 백화점 상품을 샀다"고 말했다. 한 금융회사는 1억5000만원어치의 선물을 한꺼번에 구입하기도 했다.


◆대형 유통가 기업특수 '쏠쏠'

설(2월3일)을 1주일 앞둔 백화점 대형마트 온라인몰 등 유통가가 '명절 특수'로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해 경기 회복으로 실적이 좋아진 대기업과 금융사 등이 설 선물과 보너스 보따리를 넉넉하게 풀면서 설 대목 경기의 불을 지피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매장 선물세트 판매를 시작한 지난 17~25일(설 D-17~9일) 매출이 작년 설시즌 같은 기간(1월28일~2월5일)보다 46.6% 증가했다.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도 같은 기간 설 선물 매출이 각각 42.6%와 51.7% 늘어났다. 대형마트의 매출 신장세는 더욱 가파르다. 이마트는 25일까지 선물세트 매출이 90.5%,홈플러스와 롯데마트도 각각 82.2%와 72.8% 증가했다. GS샵과 CJ오쇼핑 등 주요 홈쇼핑과 롯데닷컴 등 온라인몰 선물세트 매출도 이날까지 전년 동기 대비 20~40%씩 늘어났다.

최원일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은 "선물 수요가 많은 금융사 위주로 우수고객이나 직원들에게 줄 선물단가를 높이고 구매물량도 늘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는 공단 인근 점포들의 신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과 인접한 이마트 연수점은 25일까지 선물세트 매출이 110%,경기 반월 · 화성공단과 가까운 홈플러스 북수원점은 118% 증가했다. 북수원점 관계자는 "기업고객 세트 매출만 224.1% 증가했다"고 말했다.

◆소비자 · 재래시장은 물가 상승에 한숨

올 설 경기의 최대 복병은 '물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재래시장 등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과일과 야채 생선 등의 가격이 너무 올라 걱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마트 중동점을 찾은 이숙희씨는 "애호박 하나에 2000원이라니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설 선물도 작년엔 8개를 했지만 올해는 3개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백화점 매장 직원은 "현장에서 느끼는 선물 경기는 본사에서 발표하는 실적만큼 좋지만은 않다"며 "시즌 후반에 주로 구매하는 개인들의 매출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전체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명절 특수가 사라진 지 오래된 재래시장은 물가 상승에다 연일 이어지는 강추위로 더욱 냉랭한 분위기다. 성남중앙시장에서 과일상을 하고 있는 김희덕씨는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는지 손님이 전혀 찾아오지 않는다"며 "작년 이맘때 들어오던 선물 주문이 올해는 한 건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산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주모씨는 "갈비 선물세트를 아직 한 박스도 못 팔았다"며 "한파로 손님이 준 데다 구제역이 겹치면서 매출이 30% 넘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고향 못 갈 바엔 해외로"

여행업계는 해외여행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설 연휴 해외 패키지 상품은 이미 마감됐고,동남아행 항공기도 거의 만석이다. 구제역 탓에 고향을 찾지 못하자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수요도 가세했다. 한파와 구제역 파동에 따른 지역축제 취소 등으로 국내 여행 예약자가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나투어의 설 연휴 해외상품 예약자는 이날 현재 2만9000여명으로 지난해 설보다 93.5%,설 연휴 해외여행객이 가장 많았던 2008년 설보다 20.1%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동남아 일본 중국 순으로 많고,도시별로는 태국 파타야,홍콩,일본의 규슈,도쿄 순이다. 하나투어 부천 중동점 직원은 "3박4일 기준으로 1인당 150만원 이상인 고가품 판매가 전체의 40%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송태형/김재일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