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3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해온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과 관련, 재계가 시기상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배출권 거래제 도입으로 국내 제조업 전반의 원가 상승이 불가피하고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재계는 배출권 거래제 도입 논의시기를 2015년 이후로 최대한 늦추고 제도 도입 초기 기업에 부여하는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을 100%까지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제도 시행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2013년 조기 시행은 무리"

현재 배출권 거래제 관련 최대 쟁점은 도입시기다. 정부는 그동안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한다는 목표를 내세우며 2013년 조기 도입론을 펴왔다.

정부가 7일 재계 의견을 일부 수렴,도입 시기를 2013년에서 2015년 사이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절충안을 내놓으며 한발 물러섰지만 기업들은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 제안에 대해 일단 업계 대표들의 의견을 듣고 검토해보겠지만 최선책은 2015년 이후로 도입 시기를 늦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이날 건의문을 통해 2015년 이후 배출권 거래제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내년 시행 예정인 온실가스 · 에너지 목표관리제 운영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명확한 측정 · 검증 시스템을 구축한 뒤 배출권 거래제 도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목표관리제를 통해 정부와 산업계가 상호 신뢰할 수 있는 국가 온실가스 데이터 시스템을 확립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며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의 기준이 될 최소 3년 이상의 정보를 축적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시점에서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10% 유상 할당 땐 연 14조원 부담

배출권 무상할당 비율도 정부와 업계 간 민감한 쟁점이다. 무상할당 비율은 정부가 제도 도입 초기 온실가스 감축 준비가 부족한 기업에 주는 일종의 유예 혜택이다. 정부는 2013~2015년까지 1단계 기간에 기업에 무상으로 할당하는 배출권의 비율을 현재 90% 이상에서 95% 이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초기 무상할당 비율을 100%로 높여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정부가 제공하는 무상할당 비율이 90%인 경우 연간 30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학회사 A사는 배출량의 10%인 300만t을 정부로부터 사와야 한다.

에너지관리공단은 배출권의 10%만 유상으로 할당해도 산업계에 연간 약 5조6000억원의 추가 비용이,100% 유상할당하면 최대 14조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기간산업 예외 조항 필요"

재계는 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특례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가 주력 산업에 엄격한 배출권 잣대를 들이대면 자칫 국가 전체의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배출권 거래제가 도입되면 철강 화학 등 주요 업종의 연간 매출이 최대 12조원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이 알루미늄,화학 등 일부 업종을 배출권 거래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유상할당 적용 시기를 연기한 것처럼 기간 산업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