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000,000,000원.'

일반인은 꿈도 꾸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액수다. 물론 기업에도 큰 돈이다. 기업이 이만큼 순이익을 내려면 6조원 가까운 매출을 올려야 한다. 2009년 상장사 평균 매출순이익률 5.42%를 감안하면 그렇다. 재계 10위권인 한화그룹이 3150억원을 고스란히 잃게 생겼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으로 이행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돼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부장판사 황적화)는 10일 한화가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를 상대로 낸 이행보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한화 컨소시엄은 2008년 3월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입찰에 참여,그해 11월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인수 이행보증금으로 3150억원을 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대우조선 지분 중 일부만 우선 인수하고 나중에 잔여 지분을 매입하는 '지분 분할 인수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이듬해 1월 MOU는 해제됐다.

산업은행은 한화 측이 MOU상의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푼도 돌려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한화는 이행보증금의 일부라도 돌려달라며 서울중앙지법 조정센터에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 결국 소송전에 들어갔다.

산업은행은 "인수가 무산된 건 한화의 자금 문제였기 때문에 이행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화는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닥친 데다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저지로 실사도 하지 못해 인수를 포기한 만큼 일부를 반환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MOU 해제 사유에 해당한다는 한화 측 주장에 대해 "계약을 파기할 정도로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행보증금을 감액해 달라는 요청도 기각했다. 이행보증금 자체는 거액이지만 전체 인수대금 6조3000여억원에 비하면 5%에 불과하고,최종 계약 실패로 대우조선의 매각절차가 2년 이상 지연된 점 등을 감안하면 액수가 부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최종실사 기회를 제공하지 않아 MOU가 무산됐다'는 한화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실사 여부와 상관없이 최종 기한까지 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내용이 MOU에 포함됐고,대금 지급 방식을 변경해 달라며 한화가 확인 실사를 미룬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한화 측은 즉각 항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양준영/이현일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