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아들 발터 콜이 쓴 《살아가느냐 아니면 살아지느냐(Leben oder gelebt werden)》가 독일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콜 전 총리는 1982년 중도우파 연립내각의 총리로 시작해 1990년 독일 통일의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고 1998년 퇴임하기까지 거의 모든 독일인들의 영웅이었다.

정치인으로서,최장수 독일 총리로서 그는 수많은 탁월한 업적을 이룩했다. 하지만 셀러브리티(celebrity · 유명인사)의 사생활은 항상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2001년 7월5일 부인 한네로어 콜이 자살하면서 그의 불행한 사생활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들 발터가 아버지와 갈등으로 불행했던 삶을 고백한 이 책을 출간하면서 콜 가족의 사생활이 다시 한번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독일의 주요 언론들은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앞다퉈 전하며 "자신의 깊은 고통을 자살이 아닌 문학으로 세상에 표현한 책" "누구나 겪게 되는 인생의 그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 등의 평가를 내놓고 있다.

세상이 주목하는 유명인의 아들로 산다는 건 아들 콜에게 너무나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책에서 콜은 "아버지,당신 인생은 행복하셨습니까"라고 물으며 가족 이야기와 아버지에 대한 사연들을 털어놓았다. 끊임없이 테러 위협에 시달려야 했던 어린 시절,2001년 어머니의 자살 소식을 아버지의 비서를 통해 접했던 일,40세 이상 차이 나는 여비서와 아버지의 재혼 사실을 전보로 통보받았던 일 등.아들은 '단 한번도 가정의 의무를 위해 공무를 포기한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책을 통해 아들은 아버지와의 화해,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인생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고,분노로 가득 차 있던 내면과의 화해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았다. 그는 "누구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자신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자기 자신과 먼저 화해하라.그러면 새로운 인생의 에너지를 경험하게 된다"고 들려준다.

1963년생인 발터 콜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후 오스트리아 빈과 프랑스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부인과 함께 무역회사를 설립한 그는 한국 중국 등과의 교역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책의 첫 표지를 펼치면 'Fur Kyung-Sook(경숙을 위해)'이라는 첫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경숙은 그의 한국인 아내 황경숙 씨다.

홍순철 < BC에이전시 대표 · 북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