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자산 선호 및 단기화 현상이 뚜렷했던 자금시장에 반대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식보다는 채권,장기 상품보다는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상품에 집중됐던 자금의 물줄기가 바뀌고 있다.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고 1년 이상 정기예금 등 중 · 장기 상품에 돈이 흘러들고 있다.


◆연 4% 예금이 분기점

금융권의 단기자금 이탈현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한 이후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속속 올리기 시작한 여파다.

확정금리 상품의 대명사인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금리는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연 3%대 중반 수준이었다.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한참 마이너스였다. 정기예금에 돈을 넣으면 오히려 밑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은이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 1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은행들도 같은 수준으로 정기예금 금리를 인상하면서 정기예금의 경쟁력이 살아났다. 현재 신한은행의 월복리정기예금 금리는 연 4.2%.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 4.1%를 조금이나마 웃돈다.

단기 금융상품과 비교하면 정기예금의 위력은 더욱 크게 나타난다. 보통예금 금리는 사실상 제로(0)에 가깝고,MMF는 연 3% 안팎에 그친다. 한은 관계자는 "향후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고,은행들이 따라서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면 은행으로의 자금 이동이 더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이 현재 연 2.75%인 기준금리를 올 연말 연 3.5%까지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만큼 은행들은 정기예금 금리를 올 연말 연 5% 근처까지 올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보너스 등 예금으로 대거 유입

최근 정기예금에 몰리는 자금 중 상당수는 지난해 말과 연초 지급된 상여금으로 파악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이 경기회복에 따른 실적 호조로 적잖은 상여금을 지급했다. 삼성전자가 올초 지급한 보너스만 2조원에 이른다. 김영윤 국민은행 부천지역 본부장은 "예금 금리가 상향 조정된 데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지급하는 상호저축은행이 불안하고,주식시장마저 안심하지 못하는 직장인들이 상여금을 은행에 맡겼다"고 전했다. 은행과 예금유치 경쟁을 하고 있는 저축은행들은 지난달 14일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자금 유치에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대기업의 퇴직금 중간정산금도 은행 정기예금으로 유입되고 있다. 지난달 4000억원 이상의 퇴직금 중간정산금을 지급한 KT가 대표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금 중간정산 자금은 대체로 안전자산으로 운용하고자 하는 게 직장인들의 심리"라고 전했다. 이달 말 연말정산금이 지급되면 은행 정기예금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각 은행들은 연말정산금이 한 달 봉급에 이를 정도로 큰 만큼 벌써부터 예금 유치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