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열풍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미 100만권에 육박했다고 한다. 주말 특강은 학생과 교사, 취업준비생에 이어 486세대까지 EBS앞에 끌어 모은다. 잘 짜여진 강의 시나리오는 한때 대중을 흔들었던 김용옥의 요란했던 강의를 일축한다.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잘 정리된 철학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더구나 복잡한 현실 정치와 치열한 시장 경쟁에 지친 한국인들 아닌가.

그러나 소위 정의 논쟁이라는 것이 현실 문제를 다루는 데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논점은 과녁을 비껴가고 때로는 쉽게 도그마로 흘러간다. 샌델은 매킨타이어와 함께 공동체주의라고 부르는 철학 유파에 속하는 소위 정의론자다. 공동체주의는 자유의 가치를 때로 너무도 가볍게 취급하고 개인과 사회의 도덕 기준을 종종 혼동하는 것 때문에 구체적 사회 문제에 이르면 대체로 아무런 답변도 내놓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반시장적이며 반기업적이어서 규모가 작은 협동조합 사회에서나 작동하는 오래된 사상 체계다. 심각한 것은 샌델의 유려한 논변술이다.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하는 문답식 강의는 청중들이 자신도 모르게 공동체주의로 빠져들도록 잘 기획돼 있다.

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공리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데 바쳐진 책이다. 상인들은 폭리를 취하는 집단이며 국가는 개인의 미덕문제에 개입해야 하고 신자유주의는 자유지상적 사고여서 공동체 정신을 훼손한다는 것이 골자다. 경영자는 턱없이 높은 보수를 받아서는 안되고,금융위기는 정부 실패 아닌 탐욕의 결과이며, 공리주의는 심지어 다수를 위해 소수를 잡아먹어도 좋다는 주장에 가깝다는 터무니 없는 비판도 슬쩍 끼워 판다. 기업은 이익을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통계를 조작하며 환경을 파괴한다는 전형적인 주장을 그럴싸한 논변에 또 교묘하게 섞어 넣는다. 인권에 이어 동물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논변도 곁들인다. 이기심을 버리고 오손도손 선하게 살아가자는 직관적인 만큼이나 미성숙한 호소다. 때문에 이런 철학으로는 현실 문제에 대해 그 어떤 구체적 해법도 낼 수 없다. 실제로 샌델의 어디를 보더라도 자신이 제기한 문제 상황에 대한 철학적 답변은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그의 방법론으로는 결코 신종플루 백신을 처방할 기준이 도출되지 않는다. 그가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데 동원하는 소위 로터리 게임의 상황이 바로 신종플루 처방의 우선순위 문제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은 공리주의적 기준, 다시 말해 전염가능성 차단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에 따라 백신을 처방한다는 점을 기억하자.다른 기준은…? 아쉽게도 없다. 구제역 살처분도 마찬가지다. 샌델의 방법론으로부터는 구제역에 대처하는 그 어떤 기준도 도출되지 않는다. 살처분에 대한 과도한 보상이 축산농가의 전염 방지 노력을 훼손한다는 따위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슬쩍 은폐된다. 시장적 인센티브야말로 개인을 살리고 동시에 전체의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엄연한 현실도 언급되지 않는다. 착하게 살기만 하면 만사가 해결된다?

상인의 폭리를 비판하지만 그 상인의 초과이익이 없다면 상점은 비게 되고 결국 배급제로 간다는 역사적 사실도 애써 회피한다. 자유를 비판하지만 자유야말로 인간성의 본질 중의 본질이라는 점도 경시된다. 부분을 전체와 고의적으로 혼동하고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과장하는 오류에 기초한 논변술이다. 극단적 사례를 들어 신자유주의와 공리주의를 비판한 다음 이를 교묘하게 일반화하는 오류가 샌델을 관통한다. 이런 방법론은 '23가지'의 장하준도 마찬가지다. 시장실패를 다양하게 분석한 다음 슬쩍 국가 개입을 정당화하는 장하준 역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기초해 있다. 지옥의 증거만 수집한 결과다. 우리 사회의 열악한 지적 수준을 반증하는 열풍들이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경제교육硏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