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내 증시를 어지럽히는 외국계 금융사들을 도마 위에 올렸다. 도이치뱅크가 2004년 벌인 시세조종 사건인 '6초의 주가전쟁'에서 지난달 법원의 유죄 판결이 나오자 검찰의 칼을 가는 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지난해 '11 · 11 옵션쇼크'로 개미투자자들이 대거 깡통을 찬 것도 수사와 처벌의지를 키우는 요인이다. 외국계 금융사들의 이른바 '먹튀' 관행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외국사 추가로 넘어올 수도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22일 "주가연계증권(ELS) 의혹 및 '11 · 11 옵션쇼크'와 관련해 조사 중인 BNP파리바 ·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 도이치뱅크 외에 외국계 증권사 한 곳을 더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대상에 오른 이 증권사는 ELS와 다른 별건으로 조사 중이라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현재 2009년 ELS 수익률 조작 의혹과 관련해 국내 미래에셋증권,대우증권 외에 RBC와 BNP파리바 등 외국계 두 곳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들 금융사가 ELS 만기상환일을 앞두고 대량으로 매도 주문을 내 고의로 주가를 하락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만기일 주가가 최초 기준주가의 일정 비율 이상이면 고객에게 고액의 수익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시세조종으로 지급 책임을 면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도이치뱅크가 주도한 지난해 '옵션쇼크' 과정과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이례적으로 금융감독원 고발에 앞서 내사를 벌이고 있다. 새로 수사선상에 오른 증권사를 합치면 시세조종 혐의를 받는 외국계 은행 또는 증권사는 4곳인 셈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까지 추가로 확보한 총 13건의 ELS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 상반기 중 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넘길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외국계 금융사가 추가로 수사선 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외국사 직원 해외 도피

검찰이 외국계 금융사들을 주타깃으로 삼은 것은 '외국계 금융사에 대한 수사가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시세조종 등으로 국내 증시를 교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금력을 이용해 장 마감을 앞두고 대규모 주식거래를 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외국계와 국내사 간 형평성 문제는 금융계에서 꾸준히 지적돼 왔다. ELS 시세조종 건이 검찰로 넘어가기 전인 2009년 7월 한국거래소에서 문제가 됐을 때에도 외국계 증권사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국내 증권사만 회원 제재금을 부과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ELS 사건의 경우 주요 외국인 혐의자 두 명이 해외에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아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범죄인 인도청구는 법원에서 영장을 받을 정도로 혐의 규명이 돼야 하고 상대방 국가에서도 해당 혐의에 대해 처벌조항이 있어야 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에 따라 법인만을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과적차량의 경우 해당 운전자가 도망가면 번호판 등 증거를 통해 법인만 기소하면 법원이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을 처벌하는 사례가 많다"며 "다만 법인의 직원에 대한 관리소홀 입증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외국사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수사에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기소해 형사처벌까지 가면 이를 근거로 제기하는 민사소송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현재 ELS 시세조종과 관련해서만 투자자들이 은행 등을 상대로 낸 소송 8건이 진행 중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