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풍경이지만 어쩐지 어색해서 살펴보면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던 것과는 많이 다른 면이 있어요. 신당동 작업실로 출퇴근하면서 인왕산 풍경을 지나치는데 아침과 밤의 시간 차이 역시 제겐 색다르게 다가오더군요. "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24일부터 4월7일까지 개인전을 갖는 문성식 씨(31).그는 "삶과 죽음,시간,빛과 어둠,자연의 섭리,다양한 인간사 말고도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느낌'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카오스 같고 진창 같은 세상을 한 인간으로서 들여다 보고 그 안에서 생긴 다양한 '결'을 찾아 이를 정리하는 것이 자신의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최연소 작가로 참가했던 문씨는 관념적 사실주의 작가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추억이나 생각 등을 정밀하게 묘사하되 원근법을 무시한 채 문인화처럼 작업한다.

'풍경의 초상'을 테마로 한 이번 전시에는 점당 3~4개월씩 걸리는 노동집약적인 작업 방식으로 그린 아크릴 회화와 동양화 같은 운치가 느껴지는 연필 드로잉 등 70여점이 소개된다. 향나무나 측백나무 등 전정가위로 말끔하게 깎은 나무 정원을 그렸던 예전과 달리 유년기 기억과 경험들을 바탕으로 주변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예전에는 나무나 정원,숲과 같은 대상을 화면의 중심 무대로 설정했는데 이번 작품들에선 무대를 화면 전체로 확장시켰어요. 무대를 떠올리는 닫힌 구성에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는 열린 구성으로 바꿔 주변의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복잡한 삶의 표정을 마치 초상화 속 인물의 표정을 드러내 듯 섬세하게 긴 화면에 표현했죠."

한정된 캔버스에 스토리를 담아내기에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캔버스 대신 장지를 사용해 한지의 번짐과 중첩 효과를 극대화했다. 가령 '숲의 내부'는 화면에 수 천개의 나뭇잎 한 잎 한 잎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숲은 원시시대에서나 현대사회에서나 '세상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은 원초적인 고향으로서 숲을 그리워한다"며 "전통 한지에 수 만번 붓질의 중첩과 번짐을 통해 동양적인 인연과 운명적 사유를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의 드로잉 작품들은 회화에서 드러나지 않는 소소한 사건들을 스토리텔링으로 기술한다. 1m 크기의 작품 '별과 소쩍새 그리고 내 할머니'는 어느 한여름 병으로 고생하던 작가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경북 김천의 고향집에서 초상을 치른 작가의 경험을 담고 있다. '청춘을 돌려다오'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의 마지막 장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미술을 자신과의 사투라고 생각한다는 작가는 "빠르고 정신없이 변화하는 현대의 풍경 속에서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보편적인 풍경들을 개인적인 감성으로 되살리는 게 작가의 책무"라며 "경작하듯 모든 사물을 취하긴 하지만 이를 시각적 세계로 재구성한다"고 강조했다. (02)3210-9819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