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 시노펙스와 관련,작년 10월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기관투자가 간 담합 의혹이 불거졌다. 이전 6개월간 기관 매수세가 전혀 없던 시노펙스를 기관들이 사들이기 시작한 지 이틀 만인 작년 10월26일 한 증권사가 긍정적인 보고서를 내놔 주가가 4.68% 급등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장의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애널리스트와 기관투자가의 담합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는 논문이 처음으로 나왔다. 김경순 한국외국어대 글로벌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한국증권학회 학술발표회에서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투자자 유형별 거래 행태와 정보력 결정 요인'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보고서 이틀 전 기관 매수세 확연

김 연구원은 논문에서 "보고서 발표 이틀 전 기관의 해당 종목 거래량은 연평균 거래량 대비 18.48% 늘어 개인(7.72%)과 외국인(8.54%)에 비해 증가세가 확연했다"며 "기관에 대한 정보 누출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논문은 2005~2009년 5년간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나온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1225개(연평균 245개)를 대상으로 했다. 학계에서는 이 논문이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또 "특정 업종과 관련된 애널리스트 보고서 수가 늘어날수록 주가 영향력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장에 대한 정보 제공보다는 증권사의 (기관 대상) 마케팅 목적으로 제공된다는 시장의 의심을 떨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연구가 진행된 미국과 영국에선 보고서의 숫자가 많을수록 시장 영향력이 커지는 것과 대비된다.

◆'사전 귀띔'도 영업서비스의 일종(?)

A증권 관계자는 "많은 증권사가 애널리스트의 능력을 판단할 때 기관을 대상으로 한 영업실적도 고려한다"며 "사실상 기관을 '갑'으로 대하게 되는 만큼 '음성적인 서비스'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들은 기관이 요구할 때마다 세미나나 기업설명회에 나가 담당 업종 · 종목에 대해 설명한다. 한 해 수천억원까지 주문을 내는 기관을 고객으로 유치하려는 증권사가 제공하는 핵심 서비스가 바로 매매 대상 종목을 선정하는 리서치 기능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월 '애널리스트가 따라야 할 모범규준'을 마련,애널리스트 개인의 메일 · 메신저 사용 내역을 증권사가 모니터링할 것을 권고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애널리스트가 정식 보고서 발표 이전에 특정 기업에 대한 매도 의견을 일부 기관에 먼저 전달해 대다수 투자자를 소외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사자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B증권 애널리스트는 "기관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보고서가 발표된 뒤 만난다"고 반박했다. C자산운용 펀드매니저도 "애널리스트와 기관투자가가 관심을 갖는 종목이 비슷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라며 "자체 판단으로 특정 종목을 매입하고 있는데 증권사에서 리포트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보고서 영향력은 개인에 가장 커

애널리스트 보고서가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매매 주체는 개인투자자로 나타났다. 보고서 발표 당일 영향력 계수는 개인이 14.02로 기관(2.96) 외국인(-0.38)보다 월등히 높았다. 김 연구원은 "외국인은 보고서에 반응을 보이지 않아 국내 애널리스트의 정보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와 기업의 특성에 따라서도 투자 주체별 반응이 엇갈렸다. 개인은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낙관적일수록,보고서가 자주 나오지 않는 중소형주일수록 크게 반응했다. 기관은 수익률 변동성이 큰 종목의 보고서에 더 주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