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윤리와 사회규칙을 혼동하는 사람은 부분의 합이 전체와 같다는 오류에 빠진다. 분배 규칙과 재분배 절차를 혼동하게 되면 필시 시장원리를 부정하게 된다. 원시 자연경제를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분배와 재분배를 구분하지 않는다. 서울대 경제학 교수에 총장과 총리를 지낸 분이 대기업의 이익을 거래 중소기업들에 재분배해야 한다고 거듭 고집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다. 시장에서의 분배규칙을 부정하고 시장을 재분배 절차로 바꾸자는 생각이다. 이는 사회법칙에 대한 전근대적 미몽이다. 시장은 개인 의지의 단순집합이 아니며 복지의 총합은 개별적 이익추구의 예기치 않은 결과다. 이는 "책에 있다" "없다"로 논란이 많은 경제학의 기초다.

대기업이 망해도 당연히 어떤 중소기업은 살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은 또 필시 기존 납품업체를 수시로 교체하고 그때마다 시장에는 사체들이 나뒹군다. 개체의 죽음을 넘어서는 생태계와 종의 연속성은 그러나 여기서 시작된다. 이것이 진짜 교과서이며 동시에 현실이다. 저마다의 계산으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고 그 결과가 총량 증대를 가져온다는 것이 경제학이다. 이익공유제는 지금 존재하는 것만 존재하고 시장에는 더이상 새로운 기업이 출현하지 않는 정태적 조건에서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존재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아니 죽어버린 생태계다.

개발연대 이래 지금까지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을 부르짖지 않은 적이 없지만 여전히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출에 보증에 세제혜택에 수백가지가 넘는 지원책들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정운찬 교수는 이 미스터리의 해답을 발견한 모양이다. '대기업들이 납품가를 후려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빈후드가 필요했고 고심 끝에 아예 스스로 홍길동이 되고자 나섰다고밖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그러나 비스마르크가 히틀러가 되고 레닌이 필시 스탈린으로 전락하는 것은 동화책들이 애써 감추는 진실이다. 우리가 예쁜 동화책처럼 국정을 꾸릴 수는 없지 않은가.

1차 업체가 2차 업체를 쥐어짜고, 2차는 3차를, 3차는 4차 업체를 차례차례 쥐어짠다고 할 것인가. 맞다. 사실이 그럴 것이다. 이 냉정한 사실을 부인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그리고 필시 소비자들이 똘똘 뭉쳐 기업들을 쥐어짜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소비자를 벌주지 않으면 기업들은 정당한 이윤을 낼 수 없다고 정운찬 교수는 말해야 한다. 그 점이라면 요즘 소비자 물가 걱정이 많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다시 물어봐야 좋을 것 같다. 만일 정 교수의 말대로 A라는 납품업체에 이익을 나누어 준다면 이는 실낱같은 납품기회라도 얻기 위해 A와 죽기살기로 경쟁하는 동종 B업체에는 결정적인 재앙이 된다. 자,이제 B에게도 납품 기회를 주고 이익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기존 업체에만 특혜를 주고 신생 또는 다른 잠재적 경쟁업체는 나몰라라 할 것인가.

놀랍게도 정부는 이런 일을 실제로 하고 있다. 중소기업 살린다는 정책이 실은 다같이 죽이고 있다. 모두를 살려 놓자니 살 기업도 죽는 것이다. 그래서 거슬러 올라가 대기업에 보따리 내놔라고 하는 것이 소위 이익공유다. 동반성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은 이런 공론(空論)에 불과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슬쩍 발을 빼고 말았다. 정운찬 위원장만 덩그렇게 나무 위에 앉아 있다. 세종시 때도 그랬다. "돌격 앞으로!"라고 해서 뛰쳐나갔는데 돌아보니 혼자다. 자존심상 물러설 수도 없다. 딱한 처지다. 정치는 그렇게 비정하다. 문제는 납품업체들이 더 좋은 물건을 만들고 더 좋은 기업이 되어주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이건희 회장이지 사이비 정치가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무에 올라가는 분이나 오류로 뒤죽박죽인 청와대나 다를 것이 없다.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