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속보]한국은행이 정부의 ‘5% 성장,3% 물가안정’에 발목잡혀 금리인상시기를 놓쳤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시장 불신이 그마나 뒤늦은 금리상승 효과를 상쇄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공개 비판 보고서가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6일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배경과 향후 과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의 행보를 살펴보면 정부의 5%성장, 3%의 물가안정 기조에 얽매여 제 역할을 충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국회입법조사처가 정부기관의 운영방향에 대해 이처럼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이는 ‘물가안정’을 제1원칙으로 하는 한국은행이 청와대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성장에 방점을 둔 금리정책을 펼쳐왔다는 시장의 비판과 궤를 같이 한다.

입법조사처는 “한국은행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한 통화 및 금리정책을 적시에 수행하지 못 한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보고서는 “최근의 물가상승이 외부적 충격에 의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한은이 금리인상 시기를 놓쳐 물가상승 폭을 증가시켰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한은의 역할부재’를 질타했다.실제 청와대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최근의 물가상승이 “농수산물 및 원자재 가격의 국제가격 상승 등 외부적 요인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입법조사처는 “외부 변동요인을 제외하더라도 근원물가지수 상승률이 지난해 12월 2.03%에서 올 2월 3.08%로 오르고 외부적 충격 영향이 크지 않은 품목인 개인서비스 상승률도 작년말 2.17%에서 2월 3.02%로 급등했다”며 “이는 물가급등이 외부적 요인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과잉유동성과 초과수요에 따른 장기적 추세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일각에서 수요침체 가능성과 가계부채 등을 이유로 금리인상을 반대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조사처는 “부작용 발생을 우려해 금리인상을 늦출 경우 물가상승은 막지못하면서 경제의 불확실성만 키워 결국 투자가 감소하면서 과잉유동성이 단기자산 및 부동산으로 몰려들어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모두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현재 가계부채가 800조원 규모에 달하고,금리인상에 민감한 변동금리방식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저금리 기조를 방치할 경우 자칫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조사처는 한발 늦은 금리정책이 시장 불신을 자초한 탓에 한은의 이자율 전달경로가 시장에 먹혀들지 않고 있다며 시장신뢰 회복을 급선무로 꼽았다.금리인상 시기와 관련,보고서는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초과수요를 나타내는 GDP갭(플러스는 경기과열,마이너스는 경기침체)이 2010년 2분기부터 플러스로 전환했음에도 한은이 저금리를 장기유지하면서 부작용을 키웠다”고 비판했다.이로 인한 시장신뢰 상실로 3월 금통위의 뒤늦은 0.25%금리인상 이후에도 ‘기준금리인상- 단기 콜금리 상승-중장기 국고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이자율 전달경로가 제기능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3월 금통위의 기준금리 0.25% 인상 이후 국고채 수익률을 오히려 떨어지는 등 정책당국의 통화정책과 시장이 거꾸로 가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보고서는 “시장불신이 깊어질 경우 경제불확실성을 키우고 정책수단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올수 있다”며 “금리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확한 예측에 의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을 한은이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