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 페르손 전 스웨덴 총리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총리로 일했다. 유럽 재정위기에도 끄떡없을 정도의 탄탄한 재정을 구축하고 스웨덴식 복지모델을 완성한 주인공이다. 이런 이력답게 그는 "복지제도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지출을 늘리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걷어야 하고,국민이 정말 만족할 정도로 복지시스템이 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국민에게 욕먹지 않으려고 세금은 늘리지 않은 채 지출만 늘린 결과 재정위기에 빠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수출경쟁력이 약한 유럽에 제2의 재정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은 세계적인 수출경쟁력을 절대 약화시켜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TV와 한경미디어그룹이 지난 9~10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2011 세계 경제 · 금융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던 페르손 전 총리를 고광철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장 겸 논설위원이 만났다.

▼장기간 총리로 재직하다 민간 부문으로 옮겼는데요. 정치를 떠난 소감이 어떻습니까.

"정치에서 은퇴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삶은 보다 더 활기차졌습니다. 전 세계를 돌며 강의하고 있죠.기후변화에 관한 민간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고요. 개인적으로는 농부이기도 합니다. 스톡홀름(스웨덴 수도) 외곽에 농장을 하나 장만했거든요. "

▼한국과 관련된 일도 하고 있는지요.

"한국 기업과 직접 일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에 진출한 스웨덴 기업 중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는 기업들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

▼총리 시절인 2001년 유럽연합(EU) 의장국 수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요. 앞으로 한국이 북한을 어떤 길로 유도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북한 문제는 매우 복잡합니다. 지난 10년간 해결책을 찾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통일은 반드시 이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언제 통일이 되느냐가 관건일 뿐이죠.북한은 지속가능한 사회가 아닙니다. 해결책은 대화뿐입니다. 다른 방식,예컨대 군사적 방식은 재앙입니다. 그것은 북한식 발상이며 민주사회에서는 결코 지지받지 못할 것입니다. "

▼한국에서는 대표적 복지국가 모델로 스웨덴이 꼽히고 있습니다. 스웨덴 복지 모델은 어떤 겁니까.

"스웨덴 복지 모델을 뒷받침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항구적인 개혁이죠.시대 변화를 반영해 꾸준히 개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개혁이 복지모델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높은 조세부담률입니다. 많은 세금에 대한 대가로 고품질 교육과 의료 연금 실업수당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세금이 많으면 국민의 거부감이 심할 텐데요.

"당연하죠.그래서 공공서비스를 완벽하게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국민이 지지하고 기꺼이 높은 세금을 내게 됩니다. 높은 세율과 탄탄한 공공재정,경쟁력 있는 수출산업,이런 바탕에서 무상 의료 · 교육 혜택을 줄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스웨덴 복지모델이 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현재 스웨덴 복지모델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생산성도 높고요. 앞으론 생산성이 더 향상될 겁니다. 스웨덴도 고령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앞으로 모든 어린이에게 최대한의 교육 기회를 줘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할 기회를 줄 예정입니다. 그것이 스웨덴 복지모델의 핵심이죠."

▼한국에선 복지 요구가 늘고 있지만 세금 부담을 늘려 재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유럽 국가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이들은 재정 지출을 늘리고도 국민에게 세금을 더 내라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재정 운용이 어그러졌죠.대규모 지출은 반드시 대규모 수입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

▼국민이 세금을 더 내게 하려면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물론이죠.모든 정부는 세금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해 경제 성장을 도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공공서비스 부문의 효율성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과연 고객 중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요구사항이 효과적으로 충족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하는 거죠.진정한 고객 중심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때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

▼스웨덴은 부유세를 2007년 폐지했는데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부유세가 스웨덴의 조세수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측면보다는 정치적인 신호로서 의미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면 부유세 말고 다른 효율적인 방법으로 기여하도록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부유세를 폐지했다고 해서 부유세를 피해 스웨덴을 떠났던 국민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래 취지를 다 달성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

▼남유럽 재정위기는 여전히 큰 불안 요인입니다. 유럽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유럽 경제는 여전히 굉장히 위험합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죠.이제 1차 위기를 간신히 피한 상태일 뿐입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공공 부문 적자도 상당하죠.저금리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금리가 인상되면 2차 재정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봅니다. "

▼유럽 시장에는 투자할 만한 대상이 없다고 생각해도 되나요.

"유럽에 대해 긍정적,부정적 시나리오를 다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논리적으로 보면 유럽은 매우 비관적이죠.모든 게 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바닥'이라는 판단도 가능합니다. 유럽 자산들은 지금 무척 싼값에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

▼북아프리카 · 중동 사태가 유럽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까.

"상당히 비관적이지만,장기적으로는 유럽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민주주의 바람은 이 지역 경제를 보다 개방적으로 이끌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열리는 셈입니다. 반드시,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국가들이 혜택을 볼 것입니다. "

▼수출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지금 전 세계 수출국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별과 같습니다. 유럽 재정위기에 잘 대처하는 국가인 독일과 스웨덴 등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수출 비중이 높고 수출 품목이나 수출 대상국가가 다변화됐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반면 영국은 딱히 수출시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한국은 절대로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

▼한 · EU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비준 동의안이 한국 국회에 상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FTA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은 편인데요.

"한국은 경제 규모가 크지만 세계적 강국은 아닙니다. 한국으로선 큰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승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스스로 개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FTA는 교육 수준이 높고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에겐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시장을 개방하고,적극적으로 경쟁하고,FTA를 사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

정리=이상은/강영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