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쟁력은 부품산업에 있다. 세계에 산재한 많은 공장이 일본에서 부품을 사들여 생산한다. 따라서 이번 일본의 대지진 영향이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생산에 차질을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르노삼성이 부품공급 차질로 잔업을 줄이고 한국GM은 무기한 조업단축에 들어갔다고 한다. 전자산업에서도 문제가 이미 생겼거나 시간이 지나면 생길 여지가 있다. 재해가 발생한 후쿠시마에는 전자제품과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많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공급을 받고 있던 공장은 생산계획 집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현대 · 기아차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부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사실 공급사슬 자체가 매우 복잡해져서 2,3차 부품업체가 어디에서 무엇을 구입하는지 조립업체가 확실히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예를 들어 도어패널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소재가 일본에서 올 수도 있는데 이를 단시간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여하튼 미국은 문제가 더 심각한 것 같다. 미국의 GM 볼보 등이 연이어 생산을 중단하거나 단축하고 있다. 애플사도 문제의 심각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폰 제조원가의 약 34%에 해당하는 부품이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재해와 공급사슬의 연관관계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전 세계의 제조업은 재고 최소화를 우선시하는 일본의 린생산방식(lean manufacturing system)을 모방하고자 노력해 왔다.

이번 사태의 아이러니는 일본의 린생산방식을 충실히 따른 기업이 오히려 문제가 된 것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고 할까,인간의 노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인간에게도 문제가 있다. 종래에 볼 수 없었던 기후변화와 천재지변이 잇달아 일어나는 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이런 격변의 시대에는 부품단가를 토대로 글로벌 소싱을 결정해서는 안된다.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기업의 공급사슬 구축에 있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우선 안전과 성능에 관련된 기능부품의 관리가 중요하다. 모든 제품의 기능부품은 설계에 있어 부품업체와 완제품 메이커 간 긴밀한 협조 아래 개발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양한 공급처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공급에 차질이 생겨도 곧 공급처를 변경할 수가 없다. 기능부품을 공급하는 부품업체가 천재지변이 적은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공급사슬의 상류로 갈수록 3,4차 부품업체 수는 늘어난다. 대체할 수 있는 부품업체가 많다는 것이다. 공급사슬 상류에 구매처 다양화가 돼 있는지를 점검해 천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

셋째, 공급 프로세스의 어디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공급사슬의 '스트레스 테스트'도 해야 할 것이다.

납품단가 위주의 기존 패러다임을 수정해 새로운 공급사슬 패러다임을 채택하는 데에는 역시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중요하다. 조직은 핵심역량 소유 여부에 따라 생사가 가름된다. 보통 조직의 핵심역량이라고 하면 기술이나 노하우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조직의 궁극적 핵심역량은 CEO의 '관심'이다.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대표기업은 CEO가 강력한 지휘통솔권을 갖고 있다. CEO가 어떤 분야와 과제에 관심을 갖느냐에 따라 조직구성원의 행위가 즉각 변화되는 것이 우리나라 기업의 특징이다. 격변의 시기엔 리더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기업 CEO가 이번 재해를 보고 새로운 공급사슬 패러다임 수립에 관심을 보여 천재를 막는 방패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유지수 < 국민대 경영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