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들이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폭리 의혹과 함께 기름값 인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사상 최대였던 2008년을 뛰어넘는 영업이익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추정하는 1분기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은 7500억~8500억원으로 국제 유가가 140달러까지 올랐던 2008년 3분기의 7330억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에쓰오일과 비상장사인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의 실적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업계는 실적 향상이 유가 급등에 힘입은 것이 아니라,지속적인 투자로 사업 구조를 개선한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수익엔 크게 기여하지 못하면서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는 국내 정유사업 대신 윤활유 등 고수익 분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움직임이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정유사들 '이익은 투자의 결실'

정유사들은 그동안 고도화설비 및 석유화학 플랜트,윤활유 공정 등에 대한 투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낳았다는 입장이다.

벙커C유에서 경유 등유 등 경질유를 뽑아내는 고도화설비를 통해 정제마진 개선 효과를 크게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 들어 원유가 상승에도 단순 정제마진은 마이너스에 그치고 있지만,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10달러를 넘나들고 있다. 원유를 바로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어선 손해를 보지만,고도화설비로 제품을 생산하면 짭짤한 이익을 본다는 뜻이다.

1990년대 초 에쓰오일이 벙커C유를 경유 등유 등 경질유로 만드는 고도화설비 투자에 나선 뒤 GS칼텍스는 지난해까지 세 번째 고도화설비를 완공했다. 또 오는 5월엔 현대오일뱅크가 2호기 상업가동을 시작한다.

석유화학 부문은 중국 등 신흥시장 수요 확대와 일본 대지진 여파에 따른 공급 부족 현상의 반사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선두주자인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에 이어 에쓰오일은 올 상반기 온산공장에서 화학플랜트를 준공하며,현대오일뱅크도 일본 코스모석유와 방향족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신사업 윤활유 분야에선 증설 잇따라


고도화설비가 늘어나면서 윤활유 사업에 대한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GS칼텍스가 2007년 윤활유 사업에 진출하며 기존의 에쓰오일 SK이노베이션 등과 3강구도를 형성한 데 이어 현대오일뱅크도 고도화 비율이 높아지면서 이 분야에 뛰어들 태세다.

고도화설비와 윤활유 사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윤활기유의 원료가 되는 미전환잔사유(UCO)가 고도화설비에서 석유제품을 만들고 난 뒤 얻어지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UCO는 기존 상압증류탑(CDU · 원유정제시설)에선 거의 얻을 수 없는 유종"이라며 "고도화설비가 많아지면서 윤활유 시장에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는 2009년 공정 개선을 통해 윤활기유 생산량을 종전의 하루 1만6000배럴에서 2만3000배럴로 늘렸고,올 상반기 안에 2만6000배럴로 확대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는 2008년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건설한 데 이어 지난해 스페인 에너지 전문기업인 렙솔과 제휴,하루 1만3300배럴 규모의 생산기지를 2013년까지 짓는다. 에쓰오일도 시장 변화에 따라 향후 증산을 검토하고 있다. 윤활기유 시장은 에쓰오일이 하루 3만2000배럴 생산량으로 1위이며,SK루브리컨츠는 2만8500배럴로 뒤를 잇고 있다.

윤활유 사업은 정유 회사의 수익성에선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지난해 윤활유 사업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1%를 웃돌았으며,SK루브리컨츠도 15%에 달했다. 반면 정유사업의 영업이익률은 2~3%에 그쳤다. 지난해 GS칼텍스에서 윤활유 관련 매출 비중은 전체의 3.5%에 그쳤지만,영업이익률은 21.9%나 됐다는 점이 윤활유 사업의 위상을 대변한다.

정유업체 한 관계자는 "정작 수익은 윤활유,화학 등 신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얻고 있는데 이 같은 점이 간과된 채 기름값 인상만 부각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윤활기유

윤활유 완제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 원료로 첨가제와 섞어 자동차 · 선박 및 산업용 윤활유 완제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윤활유 1배럴은 승용차 약 40대 분량에 해당하는 양이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