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은퇴시장 10년 후 680조원] 베이비부머 퇴직 본격화…개인연금 3배 이상 커져 496조 전망
1980년 당시 한국 남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62세였다. 대개 55세 때 정년 퇴직을 하고 7년가량 더 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다보니 당시에는 은퇴 설계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불과 30년 새 기대수명이 크게 늘었다. 현재 한국 남녀의 평균 기대수명은 90.8세로 늘었다. 55세를 기준으로 은퇴하면 35년을 더 살 것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다. 장수가 곧 리스크(위험)로 다가온 것이다. 그만큼 은퇴 준비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어둡다. 은퇴 및 노후 준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와 퇴직연금 제도 도입 등을 통한 제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 가계의 은퇴 준비는 지난 5년간 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은퇴자산 선진국에 비해 부족

지난해 한국 가계가 노후를 위해 준비한 은퇴 금융자산은 개인연금 155조원,퇴직연금 45조원을 합쳐 200조원으로 파악됐다. 작년 말 개인 금융자산이 2120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가계의 전체 금융자산에서 은퇴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그친 셈이다. 사적연금과는 별개로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은 341조원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은퇴시장은 변액연금 활성화와 퇴직연금의 가세로 지난 5년 동안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은퇴시장 규모는 2005년의 105조원(개인연금 83조원,퇴직연금 22조원)보다 2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은퇴자산의 비중도 같은 기간 12.2%에서 17.5%로 늘어났다.

하지만 은퇴 선진국과 비교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은퇴 금융자산은 2009년 기준 1경3999조원에 달해 GDP의 84%를 기록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공적연금제도가 미흡하지만 개인 은퇴자산은 2454조원(2009년)으로 GDP 대비 39%를 점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은퇴자산도 GDP 대비 67%로 한국의 4배가량이다.

◆10년 후 은퇴시장 비약적 성장

베이비부머의 본격적인 은퇴로 은퇴 준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의 은퇴시장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은 향후 10년간 매년 GDP가 4% 성장하고 개인 금융자산이 연 평균 8.4%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2015년 은퇴시장 규모는 387조원,2020년에는 6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지난 5년 동안 연 평균 13.2%의 성장률을 보인 개인연금 시장은 2020년에 작년보다 3배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는 175조원으로 지난해보다 20조원가량 증가한 뒤 2015년에는 283조원,2020년에는 496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최근 5년간 급성장세를 보인 변액연금은 지난해 35조원에서 2020년에는 240조원으로 7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대형 생명보험사는 물론 중소형 생보사들까지 방카슈랑스를 통해 연금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며 "2~3년 후에는 일시납 연금시장도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 시장도 2020년에는 180조원 규모로 작년보다 4배 확대될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세제 관련 조항이 개선되고 미국처럼 실적배당형인 확정기여형(DC) 상품 가입자가 증가할 경우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삼성생명의 분석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2020년 한국의 GDP가 168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은퇴자산 비중이 GDP 대비 40%에 이를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수치도 선진국의 현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부족한 것이어서 국내 은퇴시장은 2020년 후에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개인연금·퇴직연금

◆개인연금=매달 일정액을 납부해 노후에 연금으로 받는 금융상품.10년 이상 저축하고 나서 만 55세 이후 원리금을 5년 이상 연금 형태로 지급받는 연금저축과 생명보험사에서 판매하는 연금보험이 있다.

◆퇴직연금=회사가 사외 금융기관에 매년 퇴직금 해당 금액을 적립하고 근로자는 퇴직할 때 연금 또는 일시금을 지급받게 되는 제도.퇴직급여가 확정되는 확정급여형(DB)과 근로자가 운용 방법을 결정하는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