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작된 논란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석 달 동안 법석을 떨고 난 정부가 내놓은 결론은 황당했다. 담합이나 폭리는 없었고,기름값을 인하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기름값이 정부 압박에 의해 정유사의 한시 인하로 돌파구를 찾기에 이르렀다. 황당한 궤변과 억지로 대통령과 소비자를 기만하고,정유사에 엄청난 손실을 떠넘겨버린 장관들은 무거운 책임을 져야만 한다. 회계학 원론도 기억하지 못하고 시장경제의 원칙도 이해하지 못하는 회계사 출신의 장관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정부의 대책은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것들이다. 온라인 거래 시장을 만들고,정유사 제품의 혼합 판매를 허용하며,자가폴 주유소를 지원하겠다는 발상은 석유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것이다. 농산물도 '브랜드화'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유독 석유제품은 '상표'를 떼고 마구 섞어서 팔아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휘발유와 경유는 정유사의 대규모 시설과 첨단 기술력으로 생산하는 공산품이다. 개별 주유소가 품질을 보장할 수도 없고,소비자가 품질을 쉽게 확인할 수도 없는 제품이기도 하다.

정유사의 제살 깎아먹기도 소비자와 국민 경제에 부담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당장 기름값이 내려갔다고 좋아할 일이 절대 아니다. 정당한 이익을 보장받지 못한 정유사는 결국 필요한 기술 개발이나 시설 투자 능력을 상실해서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엄청난 규모의 시설 투자가 필요한 정유 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정유사의 독과점 위험은 규모의 경제에 의한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담인 셈이다. 우리가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감시를 통해 독과점의 위험도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정부 발표에서 확인된 명백한 진실이다.

정부가 달콤한 유류세 수입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나라와의 통계적 비교는 무의미한 말장난이다. 세율이나 상품 가격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교묘한 통계로 대통령과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 유류세는 지나치게 과도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사 휘발유와 유사 경유에 의한 유류세 누락분이 무려 5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유사 석유제품은 과도한 유류세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나치게 부과되는 유류세를 보완하기 위한 각종 환급금과 보조금의 부담과 비효율도 심각하지만 그에 따른 도덕적 해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과도한 유류세가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의 유혹에 빠뜨리고 있는 셈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류세의 불합리한 구조다. 유럽에서는 '클린 디젤'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경유가 우리에게는 싸구려 연료로 인식되는 것도 불합리한 유류세 때문이다.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난방용으로 마구 낭비하게 된 것도 유류세 때문이다. 난방용 전기 수요가 23%를 넘어서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등유의 난방 효율은 90%를 넘지만 난방용 전기 생산의 효율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소비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액화석유가스(LPG)의 과다 소비도 심각한 사회 문제다.

유류세 개편은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유류세의 합리적 개편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효율화시키지 못하면 녹색 성장의 꿈은 절대 실현시킬 수 없다. 우리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묵묵하게 뒷받침해왔고,지금도 최대의 수출 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정유산업과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언론도 이번 정부 발표에 담겨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