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광의 간판상품이자 대한민국 의료 수준을 세계에 드높이고 있는 영역이 '미용 성형수술' 분야다. 건강검진 피부과 치과 한방치료 등 많은 의료관광상품이 있지만 이 중 '8할이 성형수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높은 치료 수준에 걸맞은 대접을 받고 있고 고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게 한국의 성형이다.

성형외과계에서도 서울대 의대 출신 인맥들이 한마디로 꽉 잡고 있다. 학계(의대 교수)에서는 어느 임상 · 기초의학 분야나 서울대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막상 개원가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유독 성형외과에서는 병원 규모나 몰려드는 환자 수나 진료수입 측면에서 서울대 출신이 잘나가고 있다.

서울대 성형외과 교실 동문수첩에 따르면 1980년부터 2011년까지 졸업한 동문(성형 전문의 취득 기준)은 102명에 달한다. 서울대의대를 나왔어도 이곳에서 성형수련을 하지 않으면 동문으로 치지 않는 깐깐함을 보인다. 면면을 보면 김석화 서울대병원 교수,이택종 · 고경석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교수,오갑성 · 방사익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등 학계 주요 인물도 끼어있으나 나머지 대다수는 개원의다. 박양수 드림성형외과 원장,김병건 BK동양성형외과 원장,박원진 원진성형외과 원장,이석준 · 김우정 리젠성형외과 원장,박상훈 아이디병원 원장,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김수신 레알성형외과 원장 등 성형수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성형외과를 꾸리고 있다.

초기에는 연간 성형외과 전문의 입학 정원이 3명이었다가 최근 6명으로 점점 늘어났으나 동문이 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인턴을 마치고 진료과를 정하는 레지던트를 정할 때에는 보통 성적순에 따라 과별로 1.5 대 1의 경쟁률을 넘는 법이 별로 없는 게 서울대 의대의 관행이었지만 1989년부터 1993년 사이의 성형외과 교실 졸업자(전문의를 취득한 이듬해 2월에 졸업)는 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성형외과를 지원할 정도로 피튀기는 전쟁을 벌였다.

다들 실력을 갖춘 사람이지만 인턴을 수료한 당해연도에 성형외과에 들어가지 못하면 재수를 한다든가,군대나 다른 병원에서 수년간 근무했다가 다시 성형외과에 기를 쓰고 들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서울대 성형외과 교실에서 정말 독보적인 미용성형 기술을 가르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김병건 BK동양성형외과 원장은 "의대 커리큘럼상 성형외과에서는 화상 절단 등으로 초래된 조직 손상과 기능 상실을 재건하는 것이 주된 교육과정이고 얼굴 흉터나 언청이 정도를 수술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미용성형 분야의 전부"라며 "서울대뿐만 아니라 모든 의대에서 미용성형 수준을 높인 것은 외국학회를 자주 나가 신기술을 습득하고 먼저 졸업한 선배 의사로부터 세부적인 기술을 도제식으로 연마해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성형외과가 다른 의대보다 한 발짝 더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교수들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메스를 학생들에게 맡기고 아예 수술장을 떠나버리는 '자립형' 교육 방식으로 수련시키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비해 다른 의대에선 기초부터 응용까지 비교적 세심하게 교수들이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성형수술은 내과학 전공자처럼 공부를 잘한다고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손기술이 뛰어나야 하고 의사의 미적 감각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대다수 성형외과 의사들은 '인간 재봉틀'이라고 할 정도로 봉합 연습을 피땀나게 한다고 김 원장은 전했다.

한국인의 섬세한 손재주도 물론 한국을 성형 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이다. 손가락이 굵고 손놀림이 둔탁한 서구 성형외과 의사들의 수술 장면을 지켜보면 확실히 한국인이 낫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서구인은 조직의 특성상 흉터가 잘 생기지 않고 수술 과정 중 피가 덜 나기 때문에 거칠게 수술해도 먹히지만 동양인은 흉터가 생기기 쉽고 출혈량도 많아 섬세한 테크닉이 요구된다"며 "서구인에 많은 매부리코 교정수술 등 몇 가지를 빼고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성형수술이 세계 정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국내 미용 성형수술은 미국에서 이 분야를 전공하고 돌아온 백세민 씨가 1980년대 중반부터 대중화시켰다. 컬러 TV보급이 확대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외모지상주의가 확산된 게 성형 붐을 불지폈다. 198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내과와 외과 의사를 제일로 쳤지만 이후에는 성형외과 의사가 금값이 됐다.

의료계에 3D 기피현상이 생기면서 인턴들이 외과는 물론 성형외과도 꺼리면서 한때 안과 피부과 정신과가 반짝 인기였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의대 수석 졸업자들이 지원하는 곳이 성형외과라는 자부심을 전문의들은 갖고 있다.

김병건 원장은 국내 최대 성형외과의 대표다. 2007년 7월 성형외과 선두를 달리던 BK성형외과(원장 김병건)와 2~4위권인 동양성형외과(원장 홍성범 신용호)가 합병해 탄생한 BK동양성형외과는 폭발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21명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하루 평균 250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휴일을 포함해 매일 40~80건의 시술을 한다.

이 중 중국인이 하루 4~5명선을 차지하고 중국 대명절인 춘제 기간에는 그 서너배에 달하는 환자가 몰려 수출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김 원장은 격주로 중국으로 건너가 성형수술을 해주고 온다.

이에 뒤질세라 많은 서울대 성형외과 의사 후배들이 규모나 테크닉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배에 도전하고 있다. 남에게 결코 밀리기 싫어하는 엘리트 의식이 성형미용수술을 국내 일류 상품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 원장은 "중국 의사들이 언젠가는 성형기술을 배워 한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지만 한국인 특유의 열정과 손재주,영민함이 호락호락하게 성형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