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를 망친 건 플라자합의가 아니다. 과도한 경기부양책이 문제였다. "

국제통화기금(IMF)이 11일 중국의 위안화 가치 절상을 거듭 촉구하면서 이례적으로 일본의 장기 불황 원인을 분석한 3쪽짜리 리포트를 내놨다. "일본이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 절상을 용인하면서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졌다"는 중국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그동안 위안화 절상론이 불거질 때마다 이런 주장을 반복하면서 "국제사회의 환율 압력에 굴복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실제 리다오쿠이 인민은행 자문위원은 인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장기 불황은 플라자합의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엔화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됐고 이로 인해 경기침체가 가속화됐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IMF는 작심한 듯 반박 논리를 내놓았다.

IMF는 이 리포트에서 일본 경제 불황은 정부의 과도한 경기부양책 때문이라고 적시했다. 정부가 일시적인 경기 둔화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해 버블을 키웠고,결국 장기 침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985년 일본의 무역흑자가 지속되자 선진국들은 플라자합의로 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 절상을 유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엔화 가치가 높아지며 1986년 상반기에 성장률이 둔화되자 일본 정부는 바로 경기부양책을 추진했다. 1987년 대규모 재정지출 프로젝트를 시행했고 정부는 금리를 2%포인트 내렸다. 덕분에 1987년 일본 경제는 성장률이 회복됐지만 신용 규모가 급증하고 자산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주식과 도시의 주택 가격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4년간 3배 올랐다.

IMF는 "일본 경제는 이미 1986년 하반기에 회복 기미를 보였는데도 정부가 1989년까지 부양책을 밀어붙이면서 자산 버블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결국 1990년 1월에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IMF는 버블이 꺼지는 과정에서 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었지만 일본은행은 충분한 자금을 공급하지 않았고 1997년에는 오히려 긴축재정을 실시해 경제 회복의 싹을 짓눌러버렸다고 지적했다.

IMF는 특히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상황이 지금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홍콩에서 신용 규모 팽창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이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IMF는 "중국과 같은 신흥 경제는 경기 과열을 방지하는 데 화폐 고평가와 고금리가 도움이 되며,이는 또 세계경제 불균형을 완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라며 위안화 절상이 중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도 이날 중국의 위안화 가치 절상을 촉구했다. 그는 "브라질 헤알화 가치 절상은 무역파트너인 미국이나 중국 탓이 아니라 브라질 경제의 역동성 때문"이라며 "(중국도 인위적으로 환율 변동을 막지 말고) 더 유연한 환율시스템을 도입하고 위안화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IMF 등은 위안화의 완전한 변동환율제 도입과 급격한 가치 절상을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액과 환율 통제 능력 그리고 자본규제 등을 감안할 때 일본과 같은 급격한 절상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플라자합의

Plaza Accord.1985년 9월 22일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등 선진 5개국 중앙은행 총재가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의 만성적인 경상적자를 줄이기 위해 각국 정부가 협조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절상시키기로 합의한 협정.이후 미국 경제는 달러 약세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일본은 엔고로 수출에 타격을 입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