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신공항, 종편, 그리고 기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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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실용 정권에 번지는 무력감…사회공학적 국정의 예고된 결과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자유무역협정(FTA) 표결안에 기권한 속사정은 알 수 없다. 아마 지역구 경쟁자인 노회찬의 대중노선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논란이 많았던 정두언의원의 대구 강연도 그렇다. 그렇게 배신과 고뇌의 계절이 왔다. 권력이 이념과 철학 없이 중간투표자정리(Median Voter Theorem)에 의존할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행보는 국민들이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되는 저간의 사정을 잘 보여준다.
신공항이 없었던 일로 된 것은 정권 출범이 3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촌놈 데리고 장난치나!"하는 지역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3년 동안 지역 전체가 가덕도와 밀양으로 갈라져 싸웠는데 막판에 와서 "둘 다 없던 일로 하고…,미안하게 되었고…"로 되고 말았다. 분노와 실망은 역시 기대치의 함수다. 비용편익분석에서 10점 만점에 7점이었다는 분석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어진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말을 'ceteris paribus'라고 하지만 모든 경제학 논문은 바로 이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점도 기억해둘 만하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이 같은' 상황이라면 그 어떤 새로운 도전도 불가능하다.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이 경부고속도로와 포철과 자동차와 반도체 사업에 반대했던 것도 바로 ceteris paribus의 덫에 걸렸던 때문이었다. 자동차가 없는데 고속도로는 왜 만들며, 소득이 없는데 자동차는 누가 탈 것인지를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걱정했고 결국 아둔하게도 모든 개발 사업에 반대하게 되었다.
신공항도 이런 조건에서 7점이라는 불합격 점수를 받았다. 중국 여행객이 얼마나 신공항을 통해 한국을 방문할지에 대한 주어진 조건이 보수적이라면 경제성은 언제나 제로를 향해 낙하하는 탄도 궤적을 그리게 된다. 만일 고 정주영 회장에게 동남권 신공항 경영을 맡긴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부족하다는 3점을 어디선가 메우고 필시 경영에선 흑자를 낼 것이다. 관광객이 없으면 중국에 쫓아가서라도 모셔 올 것이다. 그런 일은, 후보지 선정에 3년을 끌면서 재미 좀 봤던 간신들이 아니라 황무지를 일구는 기업가들이 하는 일이다. 만일 두 도시 중 어느 하나에 줄 수 없었기 때문에 백지화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종합편성 채널 선정도 그랬었다. 언론사들은 3년 동안이나 정권이 내려줄 떡을 향해 경쟁해왔다. 이 경쟁에는 곡학과 아세조차 어느 정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판에 와서 "하고싶으면 다 해봐라"며 빌라도처럼 손을 씻었다. '둘 다 없던 일로 하고'와 '모두 다 해봐라'는 것은 무책임이라는 본질에서는 논리구조가 동일하다. 결국 언론사들은 사업성이 없다며 도망가려는 기업 출자자들을 붙들기 위해 놀랍게도 협박모드로 돌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해야 했다. 모 언론사는 종편 자본금을 채우기 위해 결국 '사채를 끌어들인다, 풋백옵션을 준다'며 더욱 결사적인 부실과 저질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신공항과 종편 선정 문제는 이 정권이 국책 아젠다를 어떻게 기회주의적으로 처리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얄팍한 계산 속과 비겁한 책략이 정권의 중심철학을 규정하고 있다. 약속과 원칙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그 결과 배신의 계절풍이 불기 시작했고 서로가 먼저 난파선에서 뛰어내리기를 경쟁하게 되었다. 사실 촛불시위에서나 세종시 논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에 나와 목숨을 걸고 싸워준 참모도 없고 우군을 모아 제대로 된 철학의 전쟁을 해보겠다는 움직임도 없었다. 오로지 대통령 옆에 앉아 그의 얼굴만 바라보며 비겁한 투항 전략을 짜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을 기회주의적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우리는 달리 부를 이름이 없다. 그리고 친서민이니 공정사회니 동반성장 등의 이름만 그를 듯한 사회적 뇌물 정책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렇게 정치 이념과 철학은 점차 잊혀졌다.
정규재 논설실장
신공항이 없었던 일로 된 것은 정권 출범이 3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촌놈 데리고 장난치나!"하는 지역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3년 동안 지역 전체가 가덕도와 밀양으로 갈라져 싸웠는데 막판에 와서 "둘 다 없던 일로 하고…,미안하게 되었고…"로 되고 말았다. 분노와 실망은 역시 기대치의 함수다. 비용편익분석에서 10점 만점에 7점이었다는 분석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어진 조건이 같다면…'이라는 말을 'ceteris paribus'라고 하지만 모든 경제학 논문은 바로 이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점도 기억해둘 만하다. 그러나 '주어진 조건이 같은' 상황이라면 그 어떤 새로운 도전도 불가능하다.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들이 경부고속도로와 포철과 자동차와 반도체 사업에 반대했던 것도 바로 ceteris paribus의 덫에 걸렸던 때문이었다. 자동차가 없는데 고속도로는 왜 만들며, 소득이 없는데 자동차는 누가 탈 것인지를 경제학자들은 언제나 걱정했고 결국 아둔하게도 모든 개발 사업에 반대하게 되었다.
종합편성 채널 선정도 그랬었다. 언론사들은 3년 동안이나 정권이 내려줄 떡을 향해 경쟁해왔다. 이 경쟁에는 곡학과 아세조차 어느 정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판에 와서 "하고싶으면 다 해봐라"며 빌라도처럼 손을 씻었다. '둘 다 없던 일로 하고'와 '모두 다 해봐라'는 것은 무책임이라는 본질에서는 논리구조가 동일하다. 결국 언론사들은 사업성이 없다며 도망가려는 기업 출자자들을 붙들기 위해 놀랍게도 협박모드로 돌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해야 했다. 모 언론사는 종편 자본금을 채우기 위해 결국 '사채를 끌어들인다, 풋백옵션을 준다'며 더욱 결사적인 부실과 저질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신공항과 종편 선정 문제는 이 정권이 국책 아젠다를 어떻게 기회주의적으로 처리해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얄팍한 계산 속과 비겁한 책략이 정권의 중심철학을 규정하고 있다. 약속과 원칙의 무게는 가벼워졌다. 그 결과 배신의 계절풍이 불기 시작했고 서로가 먼저 난파선에서 뛰어내리기를 경쟁하게 되었다. 사실 촛불시위에서나 세종시 논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장에 나와 목숨을 걸고 싸워준 참모도 없고 우군을 모아 제대로 된 철학의 전쟁을 해보겠다는 움직임도 없었다. 오로지 대통령 옆에 앉아 그의 얼굴만 바라보며 비겁한 투항 전략을 짜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것을 기회주의적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우리는 달리 부를 이름이 없다. 그리고 친서민이니 공정사회니 동반성장 등의 이름만 그를 듯한 사회적 뇌물 정책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렇게 정치 이념과 철학은 점차 잊혀졌다.
정규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