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 통역사를 찾을 때는 어학 실력보다 용모나 나이가 우선입니다. "

국내 통번역인력의 산실격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의 김현택 원장(55 · 사진)은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이같이 꼬집었다.

최근에는 반년짜리 어학연수만 다녀오면 너도나도 영어 번역을 하겠다고 나서고,중국어 번역은 조선족들까지 시장에 뛰어들어 시장이 혼탁해졌고 수준도 떨어졌다는 게 김 원장의 지적이다.

일부 중소기업과 정부는 싼값에 현혹돼 검증되지 않은 업체나 개인에게 번역을 맡기는 일이 많다. 김 원장은 "통번역 전문인력의 중요성이 간과된 것이 최근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오역 사태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해외 사업 경험이 많은 대기업들은 서류 문구 하나,프레젠테이션의 단어 선택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를 내는지 잘 알고 있다"며 "업계에선 한 발 차이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기업들은 검증된 전문가에게만 일을 맡긴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정부들은 외국어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비용을 투자한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엔 FTA 등 모든 의결사항을 21개 회원국의 공식언어로 번역할 별도의 법률 전문직종이 있다. 이들은 언어에 능숙할 뿐 아니라 법률에도 해박하다.

또 협상에 임하는 담당자들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김 원장은 "가까운 중국도 정부에 통번역을 담당하는 독립 기관이 설치돼 있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전 국민이 영어를 잘하게 하는 것과 최고 수준의 언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며 "필요할 때만 주먹구구식으로 아무나 데려다 쓰고 '크게 문제만 안 생기면 그만'이라는 식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국민이 해적에게 납치됐는데 말이 안 통해 또 다른 외국인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한국으로 송환된 소말리아 해적들을 심문할 당시 소말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 릴레이 통역을 실시했다.

그는 빈번하게 쓰이지 않는 외국어(우크라이나,소말리아 등) 전문인력은 소수라도 전략적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이런 인력들은 시장에 맡겨서는 양성할 수 없다"며 "이런 인력은 평소에 놀더라도 결정적일 때 제 역할을 한다면 국가적으로는 큰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