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중견업체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재용 씨(53)는 다음달 2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리는 '2011 한경 Money&Investing 전국 로드쇼'에 참석할 예정이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노후 계획을 세우지 못한 그는 이날 전문가 강연과 1 대 1 상담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 현재 그가 1년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6000만원 정도.그런데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비로만 월 200만원을 쓰고 있다. 5년 전 빚을 끌어다 산 100㎡(30평)대 아파트 때문에 은행 대출 이자만 매달 150만원을 낸다. 여기에다 각종 공과금과 생활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월급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견디다 못해 작년엔 아파트까지 내놨다. 그럼에도 최근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매수자는커녕 집을 보러 오겠다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다. 박 부장은 "한경에서 이런 좋은 행사를 열어줘 참 고맙다"며 "은퇴 후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박 부장은 한국형 베이비부머의 전형적인 자화상이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1955~19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만 720여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은퇴는 이미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은퇴 이후를 대비해 저축이나 투자를 한다는 베이비부머는 고작 절반(50%)에 불과했다. 그나마 월평균 저축액은 17만원에 그쳤다. 은퇴 직후 무방비 상태로 제2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한국 베이비부머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대신 은퇴 후 삶을 대비하기 위한 생애재무설계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경 H2O 자문위원인 한상언 신한은행 PB고객부 팀장은 "생애재무설계란 개인의 생애주기에 따라 재산과 소득,지출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체 수지를 적자에서 흑자로 바꾸는 일"이라며 "특히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은 전문가 도움을 받아 현재 재무 상태를 진단하고 향후 자산 및 수입 지출 플랜을 재조정하는 작업에 당장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재테크와 무엇이 다른가

생애재무설계는 단순히 돈을 좇는 재테크와는 다르다. 재테크에는 뚜렷한 목표가 없다. 재테크 서적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종잣돈 1억원 만들기''100억원 만드는 법' 등은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반면 생애재무설계는 먼저 돈을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를 정한 뒤 거기에 맞게 돈을 모은다. '내집 마련'이나'은퇴자금 모으기' 등 구체적인 재무목표를 먼저 설정한 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특징이다.

◆생애주기 맞춰 재무목표 세워라

생애재무설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목표 설정이다. 라이프 사이클을 학생기(10~20세) 사회초년기(20~30세) 가정구성기(30~40세) 자녀성장기(40~50세) 가족성숙기(50~60세) 노후생활기(70세 이후) 등으로 나눠 사이클마다 주요 재무 이벤트를 결정한다. 대표적인 이벤트로는 결혼, 내집 마련, 자녀 교육, 노후 준비 등이 꼽힌다.

일반적으로 이 네 가지 이벤트를 중심으로 재무 목표가 설정된다. 가령 '3년 뒤 결혼자금 3000만원','10년 뒤 수도권에서 내집 마련' 등의 식이다. 특히 놓쳐버리기 쉬운 '은퇴자금 마련'은 장기 과제로 반드시 재무 목표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목표가 정해지면 재무 상태에 대한 점검부터 해야 한다. 현재 소득과 지출 현황,보유하고 있는 재산 내역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야 한다. 다음으로 현재의 재무 상태와 목표를 일치시키는 전략을 수립한다. 곧 저축 및 투자전략이다. 이 과정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스스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회사마다 재무설계 전문가(FP · financial planner)를 두고 고객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들 전문가를 적절히 활용해 전략을 세우면 된다.

◆연령 · 자산에 따라 포트폴리오 짜라

연령별 포트폴리오에서는 '100-나이' 전략이 주로 활용된다. 이 전략은 저축이나 투자 전략을 세울 때 '100-나이' 비율만큼을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위험 자산에 배분하는 것이다. 젊을수록 위험자산 비중을 높이고 나이가 들수록 비중을 감소시켜 합리적인 자산관리를 추구한다. 즉 30대 라면 아직 여유가 있는 만큼 전체 자산의 70%를 위험자산에 배분하고 나머지를 예금이나 채권 등 안전자산에 예치한다.

위험자산 내에서도 수익률과 리스크를 감안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요구된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여러 자산에 나눠 투자하면 개별 자산이 갖고 있는 고유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을 활용하거나 투자 범위를 해외로 넓히는 것도 포트폴리오 전략에 도움이 된다.

◆복리의 마술,하루라도 일찍 시작해야

생애재무설계에서 시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복리 효과 때문이다. 가령 수익률이 연 6.5%인 월복리 예금 상품이 있다고 하면 이 상품에 1억원을 10년간 예치할 경우 원리금은 약 두 배인 1억9121만원이 된다. 최초 원금 1억원이 두 배인 2억원이 되는 데는 10년이 좀 넘게 걸린다. 원금의 세 배인 3억원이 되는 것은 그로부터 7년이면 가능하다. 4억원은 이후 4년이면 충분하다. 이처럼 최초 투자금액의 배수가 되는 시기는 갈수록 짧아진다.

금리도 중요하다. '72의 법칙'에 따르면 72에서 금리를 나눈 숫자가 원금의 배수가 되는 대략적인 투자 기간이다. 연 6.5%의 경우 72에서 6.5로 나눈 11년이 원금이 두 배가 되는 기간이다.

◆재무 주치의를 만들자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때는 솔직한 태도가 필수적이다. 재무 목표가 같더라도 자산 직업 가족 연령 투자현황 등 각자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가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개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책임감 있고 역량 있는 전문가를 골라 '재무 주치의'라는 신뢰를 갖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받는 게 좋다. 향후 재무 목표 달성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신상이나 금융환경 등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을 경우 재무 주치의와의 협의를 거쳐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