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李대리] A전자 김대리네 TV가 B전자 제품이래…"코카콜라 직원이 펩시 마시다 잘린 거 알아?"
국내 굴지의 패션업체인 A사에서 있었던 일.어느날 사장이 사무실을 둘러보던 중 한 남자 직원이 경쟁 해외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불러 세웠다. 사장:"왜 우리 회사 옷을 안 입지?" 직원:"우리 회사에선 맞는 옷이 없습니다. " 유난히 덩치가 컸던 이 직원은 미국 출장길에 경쟁 브랜드의 빅 사이즈를 여러 벌 구입해 입고 다녔다. 사장은 특별 지시를 내려 이 직원을 위한 별도의 옷을 만들어 보냈다. 그러나 며칠 뒤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졌다. 잔뜩 화가 난 사장이 그를 몰아붙이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매일 같은 옷만 입고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결국 이 직원은 요일별로 돌아가며 입을 수 있을 만큼의 옷을 받았다.

코카콜라의 트럭 기사가 펩시콜라를 마시다 걸렸다면?밀러 맥주 영업 사원이 버드와이저를 들고 있다 사진을 찍혔다면?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들로,답은 모두 '해고'다.

자사 제품에 대한 로열티를 강조하는 것은 세계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일제 강점기 때 국산품 애용운동인 '물산장려운동'처럼 우리 '김과장 이대리'들도 '직장 물산장려운동'의 상황에 곧잘 처하게 된다.

◆집들이를 조심해라

대형 가전업체 B사의 직원 김모씨는 최근 집들이를 하면서 목돈이 깨졌다. 단순히 음식값 때문이 아니다. 냉장고 TV 에어컨 등 가전 제품 대부분을 자사 제품으로 바꾸는 통에 상당한 돈을 썼다. 경력 사원으로 들어온 김씨는 결혼 당시에는 가전 분야와는 무관한 기업에 다니느라 아내의 혼수품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동료의 집들이를 갔다가 타사 가전 제품 탓에 분위기를 완전히 망치는 걸 보고,출혈을 감내하며 풀 체인징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신혼인 식품업체 C사의 이모 대리는 집들이 이후 팀장에게 두고두고 핀잔을 듣고 있다. 냉장고와 찬장 등을 슬쩍 열어보던 팀장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인민재판이 시작됐다. "세상에 밀가루,설탕이 여기 것밖에 없어!왜 하필 경쟁사 걸 팔아줘!" 최대한 자사 제품을 애용하는 이 대리이지만,자사에서 생산하지 않는 밀가루와 설탕까지 문제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후 이 대리가 팀장에게 '깨질 때'마다 듣는 말."밀가루,설탕 거기 것 쓸데부터 알아봤다. 이렇게 라이벌 의식이 없어서…."

◆재테크와 애사심의 상관관계

[金과장&李대리] A전자 김대리네 TV가 B전자 제품이래…"코카콜라 직원이 펩시 마시다 잘린 거 알아?"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주는 '사내판매(사판)'앞에서는 누구나 자사제품 애용자가 된다. 홈쇼핑 회사에 다니는 주부 직장인 김모 과장은 회사의 최고등급 VIP다. 회사 직원에게 주어지는 25% 할인 혜택을 최대한 활용해 가능한 살림살이는 모두 '사판'으로 마련한다. 직원 한 사람의 연간 구매한도는 500만원이지만,김 과장이 이를 소진하는 데는 6개월이 채 안 걸린다. 이후에는 옆 자리의 독신남인 이모 과장의 한도까지 빌려 쓴다. 김 과장이 회사를 옮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사판'이라고 한다.

반대로 직장인 물산 장려운동의 최대 사각지대 중 하나는 증권사다. 증권 계좌는 자사 계정을 이용하지만,그 외 투자 상품은 무조건 수익률이 최우선 고려 사항이다. 특히 증권사마다 상품 차별성이 강한 랩어카운트 상품이 대표적이다. 증권사 지점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경쟁사의 랩어카운트 상품에 가입하러 갔다가 자사 직원끼리 마주치는 난처한 상황도 생긴다. "애사심이 수익률 내 주는 건 아니 잖아요. " 역시 돈 앞에서는 냉정하다.

◆회사 주변에서도 물산장려운동

라면업체 농심의 안성공장 직원들은 회식이나 외부 손님과 식사할 때 단골로 찾는 부대찌개 집이 있다.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망의 본점으로 음식맛도 괜찮겠지만,직원들 입장에서는 식당 주인의 '갸륵한 마음씨'가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한다. 대부분 부대찌개 집에서 특별한 브랜드가 없는 값싼 사리면을 쓰는 게 보통이지만,이 식당에서는 값이 두 배 이상 비싼 농심 '안성탕면'을 정품 그대로 사서 써 주기 때문이다.

발효유 업체 E사 인근의 설렁탕집은 정반대 케이스다. 손님으로 왔던 E사 직원 한 사람이 냉장고에서 경쟁사 발효유가 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주인에게 따져 물었으나,대수롭지 않게 대응한 것이 화근이 됐다. 화가 난 직원이 회사로 돌아가 사내 게시판에 '고발 기사'와 함께 불매 운동을 제안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것.결국 총무팀의 엄중 경고까지 받은 업주는 '백배사죄'와 함께 냉장고에 늘 E사 제품을 수북이 쌓아 놓는다.

◆없으면 사들고 간다

한국 직장인들의 삶에서 가장 많이 노출되는 브랜드 중 하나는 술 브랜드다. 두산그룹이 소주 사업을 할 당시,박용현 현 두산회장이 병원장으로 있던 서울대 병원 영안실에는 두산의 소주만 팔고 있었다. 진로 직원이나 지인이 서울대 병원에서 상을 치르면 어떻게 될까. 소주 외에 맥주와 음료수,식사대를 훨씬 더 치러주기로 하고,진로 참이슬을 외부에서 들여와 깔아 놓게 된다. 오비맥주 직원이 자신이 낀 친목 모임의 만남 장소가 아사히맥주 전문점이 되자 안주 매출을 몇 배로 더 올려주기로 하고,자사 맥주를 가져와 풀어 놓은 것도 같은 이치다.

술만큼 경쟁이 심한 아이템이 휴대폰이다. 대기업 F사의 무선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이모 대리는 신입사원 시절 퇴사 위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입사 전 경쟁사의 핸드폰을 구입했으나,24개월 약정에 묶여 있던 탓에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 사장이 그의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보고는 "애사심이 없는 신입사원은 당장 퇴사시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수십번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빈 그는 그날 당장 수십만원의 약정 요금을 물고 자사 제품으로 바꾼 뒤부터는 무엇이든지 항상 자사 계열 제품만 사용한다.

윤성민/고경봉/조재희/강유현/강경민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