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가 먼저냐 기술 혁신이 먼저냐.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괴롭혔던 딜레마다. 배아줄기세포가 의약계의 뉴 프런티어로 각광받자 일부에서는 연구를 전면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불치병에 대한 치료를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시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반론도 거셌다. 인간 복제의 길을 열어 사회 윤리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유사한 고민에 빠져 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온라인 개인 정보 수집 기술을 둘러싼 논쟁 때문이다.

구글과 애플 등 정보기술(IT) 회사들과 정보 수집 전문 업체들은 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요구한다. IT 소비자들의 개인정보와 사용 내역을 연구하면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온라인 광고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잠재 소비자의 연령,성별,직업 등에 맞는 맞춤형 광고 제작이 가능하고 그럴 경우 230억달러로 추산되는 광고 시장이 더 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보다 득이 많은 만큼 사회 윤리도 혁신의 속도와 폭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일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분별한 정보 거래와 해킹 등을 통해 제 3자에게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성년자 등 취약 계층에 대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도 불만이다. 아동이나 청소년들이 즐겨 찾는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에서 신상 정보 유출이 훨씬 더 많이 이뤄지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윤리에 맞춰 기술 혁신은 제한돼야 한다는 것이다.

열띤 찬반 논쟁은 4월13일 민주당의 존 케리 상원의원과 존 맥케인 상원의원이 온라인 개인정보 보호권리장전 법안을 입안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IT 관련 업체들과 컨슈머 유니언,민주주의와 기술 센터 등 일부 시민 단체들은 케리-맥케인 법안을 환영했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가능한 한 보장하면서도 소비자로 하여금 업체들이 모은 개인 정보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종교,의료,그리고 금융 거래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려 할 경우 동의를 구하도록 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날선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MIT가 발간하는 테크놀로지 리뷰는 법안이 기업 편의만 봐준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은 기업에 대해 직접 손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연방 정부나 주 정부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 성향의 싱크탱크인 케이토 연구소는 법안이 정부의 대 국민 정보 수집을 다루지 않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대로라면 유관 기관들의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 추적,스마트폰 및 인터넷 사용 내역 조회 등이 남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불거진 아이폰 위치추적 논란으로 한층 더 가열된 기술 혁신에 대한 미국 내 논의는 우리에게도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전방위에 걸쳐 기술 개발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기술 혁신에 대한 양극단적 사고방식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윤리 지상주의에 가로막혀 연구 개발이 좌절을 겪거나 반대로 국민 기본권이 혁신 제일주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제한적인 기능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바람직한 혁신과 윤리의 접점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대대적인 과학기술 행정 및 연구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관련 인력 확보와 조직 설립 및 운영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는 듯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과학계와 기업,그리고 정부 인사들이 함께 윤리와 혁신이 조화된 과학 기술 강국으로 가는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계섭 < 서울대 경영학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