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5월 '보릿고개', "계절의 여왕은 무슨…지출 대마왕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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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8ㆍ15일 '빅3'에 청첩장 '쓰나미'까지…
모르는 전화번호의 공포
십중팔구 연락없던 친구 결혼…솔로도 서러운데 지갑도 털려
마이너스 통장까지…
결혼하니 확 불어난 조카들
부도난 통장 메우려 은행으로
모르는 전화번호의 공포
십중팔구 연락없던 친구 결혼…솔로도 서러운데 지갑도 털려
마이너스 통장까지…
결혼하니 확 불어난 조카들
부도난 통장 메우려 은행으로
'일년 중 달력에 빨간날이 가장 많은 달.' 5월이 왔다. 올해는 5일 어린이날에서 10일 석가탄신일까지 황금 샌드위치 데이로 이어져 '봄방학'을 맞는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김과장,이대리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어린이날 꼬맹이 선물 생각,어버이날 양가 부모님 용돈 생각에 머리를 굴려 보던 중 우편물통에는 청첩장이 쌓인다. 문득문득 옆눈질을 해대는 아내를 보니 결혼기념일도 다가오고 있구나. 누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했던가. 주머니 사정만 따지면 직장인들에게 5월은 다음 월급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직장인 '보릿고개','춘궁기'일 뿐이다.
◆'적(?)'에게 나를 알리지 마라
30대 중반의 고 과장은 해마다 4~5월이 되면 휴대폰에 찍히는 정체불명의 번호에 긴장한다. 십중팔구는 결혼식을 알리는 '옛' 지인의 전화다. 여자친구도 없는 그에게 다른 사람의 결혼소식은 서러움에다 지갑까지 열게 하는 '짜증 콤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묵비권'."전화를 받고서 안 가면 쪼잔한 놈이라고 소문날 수 있죠.그래서 이때쯤에는 평소 잘 안 걸려오는 번호는 아예 씹어버려요. " 그가 덧붙이는 불평 한마디."결혼한다고 갑자기 연락하는 인간치고 감사전화 하는 놈 거의 못 봤어요. "
대기업 S사에 다니는 올해 31세 장 대리도 사정이 비슷하다. 미혼인 그녀에게 친구 아기 돌잔치는 고역이다. "결혼식이야 나중을 생각하면 부지런히 다녀야겠지만 돌잔치까지 메우려면 도대체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출판사에 다니는 류 대리는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본전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동성애자로 결혼 생각이 없는 그녀이지만,사회생활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남의 결혼식에 간다. "축의금은 돌려 받는 것을 전제로 내는 건데 나는 돈만 내고 있어요. 어차피 돌려 받지도 못할 거라 생각하면 솔직히 아깝죠."
◆유비무환? 궁여지책?
가장 안전한 방법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유비무환형이다. 형수님 생일에다 여자친구와의 1주년까지 겹친 강 대리는 야근을 자청했다. 하루에 4시간 연장근무를 해서 손에 쥐는 돈은 2만원.주말인 토요일에 근무하면 6만원을 받는다. 지난 한 달 이렇게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 해 번 돈은 50만~60만원 정도.조카와 형수,부모님 선물까지 사고선 여자친구 것은 어쩔 수 없이 카드할부를 택했다. 강 대리는 "기념일 쓰나미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져 버릴까 한 순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엄 대리는 3월부터 비자금 적립에 들어갔다. 그는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행복한 5월,우리 가족만 불행할 수는 없다는 게 '가장'들의 생각"이라며 "올해는 징검다리 연휴도 많아 눈치 없이 와이프나 아기들이 놀러 가자고 하면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 전했다.
신혼인 조 과장은 결국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로 갔다. 지난달부터 결혼식만 8건이 겹치면서 '부도'가 발생한 탓이다. 회계사 출신인 그는 아내와 함께 엑셀로 하나하나 숫자를 맞춰가면서 문제를 파악했다. 그는 "작년 11월에 결혼하면서 한 번에 구매했던 것을 할부로 제대로 갚고 있다"고 말했다.
◆5월의 신부는 불행하다?
유 과장은 5월이면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어머니와 아들 생일까지 겹치면서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탓에 결혼기념일은 약소하게 치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5월의 신부'를 고집한 자기 책임이라고 웃지만,생일도 추석 근처라 못 챙겨주는 건 마찬가지"라고 안타까워했다.
결혼 뒤엔 특히 시집과 친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대리는 결혼 뒤 장인,장모에 처할머니까지 챙기는 통에 한숨으로 땅이 꺼진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처가에 들어가는 돈이 어머니를 챙기는 금액의 세 배다. 미안한 마음에 어머니 몫으로 몇 만원 더 비싼 걸로 준비했다가 아내와 크게 싸운 뒤로는 같은 금액으로 선물을 마련한다. "왜 친정 부모보다 시어머니 것을 비싼 걸로 해야 하느냐"고 따지는데,대응 논리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께 죄송스러워 소액 상품권이라도 따로 챙길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점점 무거워지는 5월의 무게
5월 '보릿고개'는 사원보다는 대리가,대리보다는 과장으로 갈수록 중압감을 더 느낀다. 입사 뒤엔 어버이날과 결혼식 축의금 챙기는 것 정도가 대부분이지만,결혼을 하고선 양가 부모님에 형제,조카들까지 챙겨야 할 곳이 몇 곱절 늘어난다.
여기에 아이까지 생기면 5월의 웬만한 기념일 중 피할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어린이날은 물론이고,고교 졸업 뒤 남의 일로만 여겼던 스승의 날도 학부모 입장에선 빼놓을 수 없다. 유치원,어린이집,놀이방 선생님들도 모두 우리 아이의 엄연한 스승이다.
5월 보릿고개는 지갑만 축나는 게 아니다. 임원 자녀의 결혼식을 위해 청첩장 1500장을 접고 주소를 썼다는 박 대리는 주말 내내 곯아 떨어졌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워킹맘 안 과장은 어린이날이 두렵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 중 상당수가 맞벌이인 것을 감안,어린이날에 맞춰 운동회를 열기 때문이다. 안 과장은 "모처럼 쉬는 날에 온종일 노력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짜증도 난다"면서도 "그래도 회사에 긴급 사태가 생기지 않아 출근하지 않고 무사히 운동회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조재희/노경목/강유현/강경민 기자 joyjay@hankyung.com
◆'적(?)'에게 나를 알리지 마라
30대 중반의 고 과장은 해마다 4~5월이 되면 휴대폰에 찍히는 정체불명의 번호에 긴장한다. 십중팔구는 결혼식을 알리는 '옛' 지인의 전화다. 여자친구도 없는 그에게 다른 사람의 결혼소식은 서러움에다 지갑까지 열게 하는 '짜증 콤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묵비권'."전화를 받고서 안 가면 쪼잔한 놈이라고 소문날 수 있죠.그래서 이때쯤에는 평소 잘 안 걸려오는 번호는 아예 씹어버려요. " 그가 덧붙이는 불평 한마디."결혼한다고 갑자기 연락하는 인간치고 감사전화 하는 놈 거의 못 봤어요. "
대기업 S사에 다니는 올해 31세 장 대리도 사정이 비슷하다. 미혼인 그녀에게 친구 아기 돌잔치는 고역이다. "결혼식이야 나중을 생각하면 부지런히 다녀야겠지만 돌잔치까지 메우려면 도대체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출판사에 다니는 류 대리는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본전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동성애자로 결혼 생각이 없는 그녀이지만,사회생활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남의 결혼식에 간다. "축의금은 돌려 받는 것을 전제로 내는 건데 나는 돈만 내고 있어요. 어차피 돌려 받지도 못할 거라 생각하면 솔직히 아깝죠."
◆유비무환? 궁여지책?
가장 안전한 방법은 미리미리 준비하는 유비무환형이다. 형수님 생일에다 여자친구와의 1주년까지 겹친 강 대리는 야근을 자청했다. 하루에 4시간 연장근무를 해서 손에 쥐는 돈은 2만원.주말인 토요일에 근무하면 6만원을 받는다. 지난 한 달 이렇게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 해 번 돈은 50만~60만원 정도.조카와 형수,부모님 선물까지 사고선 여자친구 것은 어쩔 수 없이 카드할부를 택했다. 강 대리는 "기념일 쓰나미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져 버릴까 한 순간 고민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엄 대리는 3월부터 비자금 적립에 들어갔다. 그는 "나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행복한 5월,우리 가족만 불행할 수는 없다는 게 '가장'들의 생각"이라며 "올해는 징검다리 연휴도 많아 눈치 없이 와이프나 아기들이 놀러 가자고 하면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고 전했다.
신혼인 조 과장은 결국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로 갔다. 지난달부터 결혼식만 8건이 겹치면서 '부도'가 발생한 탓이다. 회계사 출신인 그는 아내와 함께 엑셀로 하나하나 숫자를 맞춰가면서 문제를 파악했다. 그는 "작년 11월에 결혼하면서 한 번에 구매했던 것을 할부로 제대로 갚고 있다"고 말했다.
◆5월의 신부는 불행하다?
유 과장은 5월이면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어머니와 아들 생일까지 겹치면서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탓에 결혼기념일은 약소하게 치르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가 '5월의 신부'를 고집한 자기 책임이라고 웃지만,생일도 추석 근처라 못 챙겨주는 건 마찬가지"라고 안타까워했다.
결혼 뒤엔 특히 시집과 친정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대리는 결혼 뒤 장인,장모에 처할머니까지 챙기는 통에 한숨으로 땅이 꺼진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처가에 들어가는 돈이 어머니를 챙기는 금액의 세 배다. 미안한 마음에 어머니 몫으로 몇 만원 더 비싼 걸로 준비했다가 아내와 크게 싸운 뒤로는 같은 금액으로 선물을 마련한다. "왜 친정 부모보다 시어머니 것을 비싼 걸로 해야 하느냐"고 따지는데,대응 논리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께 죄송스러워 소액 상품권이라도 따로 챙길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점점 무거워지는 5월의 무게
5월 '보릿고개'는 사원보다는 대리가,대리보다는 과장으로 갈수록 중압감을 더 느낀다. 입사 뒤엔 어버이날과 결혼식 축의금 챙기는 것 정도가 대부분이지만,결혼을 하고선 양가 부모님에 형제,조카들까지 챙겨야 할 곳이 몇 곱절 늘어난다.
여기에 아이까지 생기면 5월의 웬만한 기념일 중 피할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어린이날은 물론이고,고교 졸업 뒤 남의 일로만 여겼던 스승의 날도 학부모 입장에선 빼놓을 수 없다. 유치원,어린이집,놀이방 선생님들도 모두 우리 아이의 엄연한 스승이다.
5월 보릿고개는 지갑만 축나는 게 아니다. 임원 자녀의 결혼식을 위해 청첩장 1500장을 접고 주소를 썼다는 박 대리는 주말 내내 곯아 떨어졌다. 대기업 홍보팀에 근무하는 워킹맘 안 과장은 어린이날이 두렵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 중 상당수가 맞벌이인 것을 감안,어린이날에 맞춰 운동회를 열기 때문이다. 안 과장은 "모처럼 쉬는 날에 온종일 노력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 조금은 짜증도 난다"면서도 "그래도 회사에 긴급 사태가 생기지 않아 출근하지 않고 무사히 운동회를 마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조재희/노경목/강유현/강경민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