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으로 3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외환보유액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3000억달러,적정한가

적정 외환보유액을 측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우 회원국에 3개월치 경상수입대금(상품 수입액+대외 서비스 지급액)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쌓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올해 1분기(1~3월) 경상수입대금은 1500억달러로 현재 외환 보유액은 IMF 권고치의 2배에 달한다.

만기 1년 미만의 유동외채를 갚을 수 있을 정도가 적정 규모라는 견해도 있다. 유동외채 규모는 한국은행이 2009년부터 발표를 중단해 정확한 파악이 어렵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대략 2000억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기준으로 봐도 현재 외환보유액은 1000억달러 정도가 더 많다.

한국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선 3개월치 경상수입대금과 유동외채,도피성 국내 자본,외국인 주식투자금의 3분의 1을 더한 보수적 기준이 맞다는 시각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1월 '외환보유액의 적정성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 기준을 적용했을 때 적정 외환보유액으로 3800억달러를 제시했다.

신재혁 한은 국제국 과장은 "적정 외환보유액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과도한 달러 편식으로 '환차손'

외환보유액 운용이 달러 자산 위주로 이뤄지는 점도 논란거리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외환보유액의 63.7%가 달러표시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돼 있다.

국내 외환보유액 중 달러표시 자산의 비중은 2007년 64.6%에서 2009년 63.1%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국제 금융시장 불안을 거치면서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반면 다른 나라는 달러화 자산에 보다 거리를 두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신흥국의 달러화 자산 비중은 58.3%에 불과하고 세계 평균도 한국보다 2.3%포인트 낮다.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을 감안할 때'달러 편식'은 외환보유액의 수익성 측면에서 '환차손'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급등세를 타고 있는 금 보유 비중(0.026%)이 적은 것도 문제다. 주요국은 외환보유액에서 금 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그러나 한은은 30여년간 금을 신규 매수한 적이 없다. 한은이 보유한 금은 14.4t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52위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전 세계 10위권이란 점에서 금 보유 비중이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조달금리보다 낮은 운용 수익

외환보유액 운용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의 88.5%를 국채 국가기관채 국제기구채 등 유가증권에 투자한다. 일부 회사채도 포함돼 있지만 대부분 미국 국채나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정부 기관채다.

문제는 이런 자산은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 투자자산인 미 국채의 유통 수익률은 만기 2년물이 연 0.6%,5년물이 연 1.97%,10년물이 연 3.3%에 불과하다. 외환보유액을 쌓을 때 시중에 풀리는 원화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한은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통안채) 금리가 2년물의 경우 연 3.3%대다. 조달금리와 운용수익 간 '역마진'이 발생하는 셈이다. 여기에 미국 국채보다 수익성 높은 자산에 투자하지 못해 생긴 기회비용도 적지 않다.

한은은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해 12월 외환보유액 중 30억달러를 한국투자공사(KIC)에 위탁 운용하는 등 수익성 높이기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마인드는 바뀌지 않고 있다.

◆과잉 유동성으로 물가에 악영향

지난 4월 외환보유액 증가액 85억8000만달러는 월간 기준으로 2010년 7월(117억달러) 이후 9개월 만에 최대폭이다. 한은은 이에 대해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등의 강세로 이들 통화표시 자산의 달러 환산 금액이 증가했고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도 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설명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외환보유액 증가액 중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등의 자산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늘어난 금액이 40억~50억달러,외환보유액 운용에 따른 수익이 10억달러 정도로 추산된다"며 "25억~35억달러가량은 시장 개입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급격한 원 · 달러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를 사들인 것이 외환보유액 증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정부의 인위적인 환율 떠받치기는 또 다른 정책 과제인 물가 억제와 정면 충돌한다. 무엇보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 또 달러를 사는 과정에서 시중에 풀린 원화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한은은 통안채,기획재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 현재는 국채와 통합발행)을 발행하는데 통안채나 외평채 이자가 지급되면 결국 시중에 돈을 푸는 효과가 생긴다. 통안채와 외평채 이자 지급액은 연간 10조원 안팎에 달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