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3D 반도체 칩' 혁명] 인텔, PC 이어 모바일 칩 석권 선언…한국 반도체 주도권 위협
세계 반도체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가 '승자 독식'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에 글로벌 경쟁사들이 거센 반격을 가해오고 있다.

일본 엘피다가 삼성전자보다 먼저 25나노급 D램을 양산하겠다고 한 데 이어 이번엔 인텔이 3차원 구조의 트랜지스터를 적용한 새로운 반도체 프로세서를 연말께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엘피다가 메모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의 아성에 도전했다면 인텔은 삼성전자가 본격 진출하려는 시스템LSI(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강력한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인텔 신기술,모바일 칩 시장 넘본다

인텔이 5일 공개한 3차원 구조의 트랜지스터 기술은 전력 소비량을 기존 트랜지스터보다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그 비결은 트랜지스터 회로를 직육면체 형태로 세워 한번에 움직일 수 있는 전류의 양을 늘린 데 있다.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국의 ARM사가 세계시장에서 인텔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도 "인텔이 3D 반도체 혁명을 선언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3차원 회로 구조 기술이 소개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적절한 양산 기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개발한 인텔의 최종 타깃은 모바일기기용 반도체 시장이다. 내년부터 3차원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차세대 CPU(중앙처리장치) '아이비 브리지'를 양산하겠다는 것.인텔은 과거 PC용 CPU 시장을 석권했지만 그동안 인텔 CPU는 전력 소모량이 많아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소형 IT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때문에 스마트폰 · 태블릿PC용 CPU에서는 영국 휴대폰 반도체 전문업체 ARM의 설계를 이용한 CPU가 95% 이상을 차지해왔다. 애플과 엔비디아 퀄컴 삼성전자 등은 ARM이 모바일용 CPU를 개발하면 이를 바탕으로 설계 · 제조하는 방식으로 CPU를 만들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메이커인 인텔이 신 공정을 적용한 모바일용 CPU를 개발하면 그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글로벌 기업들,삼성 견제 본격화되나

[인텔 '3D 반도체 칩' 혁명] 인텔, PC 이어 모바일 칩 석권 선언…한국 반도체 주도권 위협
당장 세계 최대 모바일용 CPU 파운드리 업체인 삼성전자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최근 애플이 차세대 모바일용 CPU 'A6' 파운드리를 삼성전자에서 인텔로 바꾼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아이폰4와 아이패드2에 들어가는 'A5' 프로세서는 삼성전자가 생산을 맡고 있는데 인텔이 차세대 모바일용 CPU 양산에 맞춰 애플과 손을 잡을 경우 삼성전자는 매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3차원 트랜지스터 기술이 분명 새롭기는 하지만 인텔이 모바일용 반도체 시장에 안착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삼성전자가 앞섰던 반도체 집적기술에서도 위기감이 감지된다. 인텔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1965년 반도체 칩 한 개당 트랜지스터 수는 18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내놨다. 30년간 반도체 업계 진리로 통했던 이 법칙을 깬 게 삼성전자다. 2002년 황창규 사장은 '황의 법칙'(반도체 칩 한 개당 트랜지스터 수는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을 발표,인텔을 앞섰다고 공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2차원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회로 간격을 최대한 줄이는 기술에서 인텔보다 우위에 섰지만 10나노급 칩 개발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이 이번에 내놓은 3차원 트랜지스터는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실제로 인텔은 3차원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32㎚(나노미터)였던 공정 기술을 22㎚로 낮추고 2013년에는 10㎚급 공정 기술도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인텔은 당장은 새 기술을 시스템LSI 제조에 적용한다는 계획이지만 메모리반도체 공정에도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삼성전자 경쟁사들이 인텔과의 협력을 통해 나노급 초미세 공정 경쟁에서 추격전을 펼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조귀동/이태명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