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철부분의 톱니바퀴를 조금만 줄이면 생산성을 최소 3배 이상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강기봉 사장)

"좋은 생각입니다. 노동조합 회의를 거쳐 제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홍섭 노조위원장)

30일 경주 용강동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이 회사 사장실에서 강기봉 사장(53)은 주력 제품인 발전기 제어장치를 어루만지며 정홍섭 노조위원장(47)과 품질개선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라디오 연설에서 "기업 한 곳의 파업으로 전체 산업을 뒤흔드는 시도를 이젠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공권력이 투입된 유성기업 노조와 비교한 발레오 경주공장에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노사평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작년 금속노조가 111일간 회사 정문 앞을 붉게 물들인 투쟁깃발도 사라졌다. 대신 '청산 결정까지 내려졌던 발레오전장,90억원 법인세,10억원의 지방세를 내는 경주 최대 사업장"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맘 때쯤이면 금속노조 경주지부가 임단협 시기를 맞아 발레오 노조를 앞세워 경주 시내 곳곳에 투쟁깃발을 꽂고 천년고도 경주를 '노동해방구'로 붉게 물들게 한 모습도 옛말이 됐다.

강 사장은 "발레오 노사관계는 스스로 풀 수 있는 노사관계도 개별사업장에 금속노조 등 3자가 끼어들면 극단의 대립 · 갈등 관계로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면서 "유성기업이 발레오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회사 측에 2년 연속 무분규 임금협상을 위임한 정 위원장도 "유성기업에 금속노조가 개입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 회사도 지난해 초 경비원의 외주화에 맞서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자 직장폐쇄에 들어가는 초강수를 뒀다. 주주인 프랑스계 발레오 자본은 전국 금속노조 사업장 노조가 연대투쟁에 나서자 청산 결정까지 내렸다. 강 사장은 '금속노조에 회사를 넘겨줄 수 없다'며 정면으로 맞섰다. 오히려 파업 전에 비해 절반이나 줄어든 생산인력으로 제품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량을 20%나 늘렸다.

결국 직장폐쇄 93일째인 지난해 5월19일 정 위원장이 주도한 금속노조 탈퇴 조합원 투표에서 조합원 95.2%가 금속노조 탈퇴에 동의하면서 111일간 계속된 최악의 노사분규는 끝났다.

이 덕분에 이 회사는 지난해 2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 400억원의 사상 최대 흑자를 냈다. 평균 연봉도 자동차 부품업체로는 최대인 7000만원에 이른다. 올해는 작년보다 350억원 늘어난 41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발레오 노사문제가 꼬인 것은 1년 내내 중앙-지부-지회의 3중교섭과 파업으로 반복되는 금속노조의 산별교섭 때문이었다"며 "나 자신도 경영자라면 이런 금속노조 하에서는 절대로 경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사는 힘을 합해 경주공장에 StARS(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 시동이 걸리고 멈추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는 장치) 등 신개념의 전장시스템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로 했다.

경주=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